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醫學/한방춘추

자신에겐 모진 ‘착한 여자’


‘선악(善惡)’은 영어로 good and evil 또는 right and wrong으로 쓴다. 우리말에서 ‘선(善)’은 ‘착하다’로 풀이된다. 자신의 욕구를 최대한 억제하며 주변 요구를 잘 들어주고 잘 참는 사람이 ‘착한 사람’이다. 그래서 참고 견디는 것이 한국 정서에서는 미덕으로 통한다.

잦은 소화불량과 위경련으로 내원한 30대 주부. 멀쩡히 식사를 잘하고도 갑작스러운 복통과 구토로 응급실을 찾는 일이 잦아졌다. 이유없이 머리가 아프고 가슴과 명치밑이 울렁거리며 답답한 증상도 생겼다. 위내시경부터 장검사까지 받았지만 경미한 위염 외에는 별다른 이상이 없었다.

수개월 전 처음 발병 당시 환경변화를 묻자 그 무렵 집근처로 이사온 시누이가 어린 조카를 봐달라며 맡기고 가는 일이 자주 있었다고 한다. 처음엔 일주일에 한두 번이던 것이 점차 늘어났다. 그러나 환자는 “워낙 아이를 좋아해서 그런 것은 크게 신경 안 쓴다”고 말한다.

그러나 환자의 무의식은 “신경이 너무 쓰여서 안 쓰려고 많이 노력한다”로 재해석된다. 성정분석 결과 일종의 ‘착한 여자 콤플렉스(Good girl complex)’의 예다. ‘나는 착한 여자여야 한다. 내가 힘들어도 참아서 남들이 나를 착한 여자로 생각하게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다. 한 심리학자는 이를 ‘자기파괴적 사고방식’이라고까지 말한다.

일례로, 환자의 남편은 안방에 누워 “물~” “재떨이~” 하고 말만 하면, 환자는 일을 하다가도 군말없이 가져다준다. 남편과 자식 뒷바라지에 헌신적이며 순종적이다. 주변의 기분 나쁜 말에도 절대 내색하지 않는다. 물론 이런 여성상은 현모양처이자 ‘착한’ 여자로 비치기도 한다. 그러나 자신에게는 한없이 ‘모진’ 심리유형이다.

인간의 당연한 기본 욕구를 최대한 ‘억압’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타자의 시선을 늘 염두에 두면서 착하고 순종적이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심신은 늘 긴장된다. 자신의 정당한 욕구마저 자책하거나 ‘못된 여자’라는 죄책감마저 느낀다. 그러나 억압된 것은 반드시 돌아오게 마련이다. 잠시 용수철을 눌러 놓은 것일 뿐, 언제고 다시 튀어오르게 마련이다. 두 힘이 서로 겨루는 과정이 위경련이다. 즉 타협의 산물이자 도피처인 셈이다.

소화제 대신 위경련을 풀어주는 한약을 처방하고, 몸이 아프니 조카 돌보는 일도 맡지 말라고 권유했다. 이후 면담치료를 통해 “앞으로 이유없이 몸이 아프다면 ‘무엇이 싫은데 표현하지 못했는가’부터 자신에게 먼저 솔직히 물어라”라고 일러주었다.

사상의학에서는 ‘선악’을 단순히 ‘착하다/악하다’가 아니라, ‘적절하다/모질다’의 개념으로 풀이한다. 농작물에 물은 꼭 필요한 것이지만, 적절하게 줄 때 ‘선’이고, 너무 넘치거나 모자라면 ‘악’이 되는 이치다. 인간의 마음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상당수 환자들은 ‘남들도 다 그러고 살지 않느냐’며 혼자만의 치우친 기준을 보편타당한 것처럼 착각한다.

무조건 참거나 억압하면서 상대의 요구를 받아주는 사람에게 흔히 ‘착하다’라는 훈장을 달아주지만, 정작 당사자에게는 마음의 굴레가 된다. 결국 ‘착한 여자 콤플렉스’는 자신에게 한없이 모진 ‘못된 여자’의 원인이 되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