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천(開天)1528년인 서기전2370년 신묘년(辛卯年) 5월 2일 인시(寅時)에 배달나라 18대 거불단(居弗檀) 한웅(桓雄)과 단웅국(檀熊國, 웅씨국, 염제신농국 후계)의 홍제녀(洪帝女) 사이에서 탄생하신 단군왕검께서, 서기전2357년 갑진년(甲辰年)에 단웅국의 홍제의 신임으로 섭정(攝政)을 하여 서기전2334년까지 3차례에 걸쳐 서기전2357년에 유웅국(有熊國, 황제헌원국, 웅씨국)의 왕위를 찬탈한 요(堯)의 기습침략으로 왕성(王城)을 잃고, 측근의 무리 800을 이끌고 동북(東北)의 아사달(阿斯達)로 이동한지 약 1년이 지났다.
1. 아리랑 여정의 마무리
아사달지역은 흑수백산(黑水白山)의 사이에 위치하고 있었다. 단군왕검께서는 서기전2357년부터 24년간 섭정(攝政)의 자리에 있으면서 온 산천을 두루 다니면서 순방정치(巡訪政治)로 덕치(德治)을 펼치셨는데, 흑수백산(黑水白山) 사이의 땅도 섭정하던 때 역사탐방 겸 순방을 하였던 지역 중 하나였다.
공상(空桑)을 수도로 하여 태산(泰山) 부근의 산동지역에 있던 단웅국(檀熊國)에서 동북으로 3,000리 넘게 떨어진 흑수백산(黑水白山)의 아사달(阿斯達)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백성들이 함께 따르고자 하였으나, 수많은 물길과 산고개가 막혀 흑수백산의 땅으로 따라가지 못한 백성들이 뒤에 남아 불렀던 노래가 아리랑(阿里嶺)이 분명한 것이다.
개천1565년인 서기전2333년 10월 3일에 이르러 백성들을 안정시키고 나라의 제도를 정비한 단군왕검께서는, 요(堯)의 소란으로 한국(桓國)의 시조 황궁씨(黃穹氏)가 서기전6200년경에 이미 정립시켰던 천부삼인(天符三印)을 계승하였다. 즉 서기전70378년경 파미르고원의 마고성(麻姑城) 시대부터 전수(傳授)되어온 천부(天符)의 역사를 계승하여 황궁씨가 정립한 천지인(天地人)이라는 천부인(天符印) 3개를 전수받아 유인씨(有因氏), 한인씨(桓因氏), 한웅씨(桓雄氏)의 뒤를 이어 홍익인간 세상을 다시 펼치게 된 것이다.
2. 구족(九族)의 추대
배달나라는 모두 구족의 나라이다. 한국(桓國)의 9부족인 구한(九桓)이 곧 배달나라 구족이다. 구족을 고대중국에서는 그들의 조상의 나라로서 구이(九夷)라고 부르는 것이다.
배달나라 동서남북중의 8방과 9방에 9족이 살았으며, 그 중에서 황족(黃族)이 종주(宗主)가 되어 한국(桓國), 배달나라(檀國)를 다스렸다. 황제헌원이 시작한 천자국(天子國)인 유웅국(有熊國) 또한 황족(黃族)의 일파인 웅족(熊族)의 나라였다. 같은 웅족의 나라였던 염제신농국의 후계국인 단웅국(檀熊國)의 섭정을 맡았던 단군왕검은 거불단(居弗檀) 한웅(桓雄)의 아들 즉 단웅(檀雄) 천왕(天王)의 아들인 천군(天君)으로서 천부삼인(天符三印)을 계승하는 데 이미 정통성 자격을 지니고 있었다.
배달나라 말기인 서기전2357년 갑진년(甲辰年)에 유웅국(有熊國) 왕이 된 요(堯)가 일으킨 소란으로 세상이 시끄러워지자, 각 지역의 제후들과 유력한 세력자들 모두가 요(堯)를 외면하고 단군왕검을 향하여 기대를 걸고 있었다.
특히, 허유(許由)와 소부(蘇夫)는 요가 주창한 오행망설(五行妄說)과 제왕(帝王)의 도(道)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외면하였다. 배달나라의 동서남북의 제족들이 모두 덕치를 펼치던 단군왕검이 임금이 되어주기를 축원하고 추대하였던 것이다.
단군왕검이 요(堯)의 전란(戰亂)을 피하여 아사달로 간 후 약 1년 남짓한 때, 한배달 구족(九族)들이 모두 단군왕검을 천제(天帝)의 화신(化身)이라 받들고 천왕(天王)으로 추대하였다. 이는 마고성 시대 이후부터 이어져 온 화백(和白)에 의한 임금 선출과 다름없었다.
3. 천부삼인(天符三印)과 배달나라 정통계승
천부삼인은 홍익인간 세상을 실현하는 권한(權限)의 징표(徵標)이다. 즉 천부삼인은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권한으로 인간세상을 다스리는 권한을 나타내는 징표이자, 한배달 구족(九族)이 원래 하나임을 증명하는 신표(信標)이기도 하다. 하늘로부터 부여 받았다 함은 천지인(天地人) 삼신(三神)의 대리자(代理者)임을 의미한다.
단군왕검(檀君王儉)은 배달나라 한웅 천왕의 아들인 천군(天君)으로서 이미 천부삼인(天符三印)을 부여받아 단웅국(웅씨국)의 비왕(裨王)으로서 서기전2357년부터 서기전2333년까지 24년간 홍익인간 이념을 실현한 경험이 있었다. 즉 천군은 하늘과 땅을 모두 맡은 임금으로서, 천부삼인의 증거물인 거울(鏡), 북(鼓) 또는 방울(鈴), 칼(劍)을 모두 전수받은, 배달나라의 천왕(天王) 아래 작은 임금으로서, 천자(天子) 등의 천하(天下)의 제후들과는 격이 달랐다. 천자는 천부삼인 중 인간세상만을 다스리는 권한을 상징하는 칼(劍)만 전수받는 것이 된다. 이는 왕이 군사(軍師)에게 칼을 전수하며 군사권(軍事權)을 위임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단군왕검은 요(堯)의 전란을 피하여 배달나라 중심지를 떠나 옛 한국(桓國)의 중심지가 되는 아사달에 수도를 정하고, 제천단(祭天壇)인 천부단(天符壇)을 흑수백산(黑水白山)이라 할 때의 백산(白山)에 두었다. 백산은 일명 단군조선의 태백산(太白山)이며, 지금의 백두산(白頭山)이다. 고구려와 대진국(발해) 시대에 백두산을 태백산이라고 하였으며, 신라 초기에도 백두산을 태백산이라 하였던 것이며, 강원도 태백산을 남태백산(南太白山)이라 불렀다.
신정일치(神政一致) 시대의 수도는 정치중심지보다도 종교중심지를 더 중요시 하였던 것이 된다. 그리하여 단군조선의 중심지는 본 제천단을 둔 태백산 즉 백두산이며, 사보(四堡)가 되는 동서남북의 지역에 다시 작은 제천단을 두고 비왕(裨王)으로 하여금 다스리게 하였던 것이다. 이리하여 백두산을 기점으로 사방 반지름 3,000리가 되는 지역이 단군조선의 직할영역인 삼한(三韓) 관경(管境)이 되며, 그 외 지역이 천하(天下)가 되는 것이다. 한국시대의 천산(天山)과 배달나라 시대의 태백산(太白山)은 종교적 중심지인 천부단(天符壇)이 있는 곳이기도 하고 정치적 중심지인 수도(首都)이기도 한 것이다.
단군왕검은 약 1년간에 걸쳐 나라의 제도를 정비하고서, 서기전2333년 무진년(戊辰年) 10월 3일 구족(九族)의 정식 추대에 응하여 천왕(天王)으로 즉위함으로써, 천부삼인을 전수받아 재세이화(在世理化), 홍익익간(弘益人間)을 실현하는 지상 최고최상 즉 중앙의 나라로 불리는 하늘나라(天國, 上國)의 본 임금으로서, 배달나라의 정통성을 계승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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