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결발부부(結髮夫婦)’라고도 표현한다. 머릿결을 단단히 묶어 한 몸처럼 살아가는 삶을 뜻한다. 부부가 같은 곳을 바라본다는 건 행복한 거다. 그러나 내가 바라보길 원하는 것만 우선하는 순간 고통은 시작된다.
삼차신경통으로 내원한 30대 주부. 얼굴과 머리에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있고, 입술 주변은 감각이 먹먹하다. 정확히 얼굴의 오른쪽 절반만 그렇다. 수개월째 고생 중이며 호전과 악화가 반복되었다. 삼차신경통은 외상이나 대상포진 외에도 면역력이 약해지면 바이러스가 얼굴 신경을 침범해 발생한다.
안신보기(安神補氣)에 좋은 한약을 처방했다. 진통제를 쓰거나 안면부 신경을 직접 자극하기보다, 마음을 안정시키면서 면역력을 증강해 바이러스 활동을 약화하는 방식이다. 한달 후 통증과 감각장애는 현저히 줄었다. 그럼에도 환자는 “이상하게 금요일쯤엔 조금씩 재발한다”고 말한다.
왜 하필 금요일일까. 환자는 남편과 종교갈등이 있었다. 남편은 불교, 환자는 기독교 신자다. 최근 들어 남편은 “부부가 종교가 다른 게 말이 되는가”라며 “교회 말고 절에 가자”며 다그친다. 환자 역시 질세라 교회를 더 열심히 가려고 일요일마다 언쟁을 벌였다.
매주 금요일쯤 되면 또 한바탕 싸울 걱정과 스트레스에 통증이 재발한 것이다.
한 선승은 “이중국적도 허용되는 마당에 두 세 가지 종교를 믿는 것이 왜 문제인가. 기도는 절에서 하고, 인맥 쌓기는 교회에서, 헌금은 성당에 해도 된다”고 말한다. 모든 법도는 공허하니(諸法皆空) 굳이 형식에만 얽매이지 말라는 설명이다.
내 아내와 자식이라 해서 자신의 믿음만 강요하는 것은 진정한 종교적 가르침이 아니다. 머리채를 끌다시피 남편이 하고 싶은 대로만 강요하는 게 결발부부의 참모습도 아닐 것이다. 그러나 아내 역시 자신의 뜻만 고집하면 결국 파국으로 치닫고 만다.
환자 부부의 종교갈등은 표면적 이유에 불과하다. 애초에 종교가 원인이라면 결혼 전에 문제삼아야 하고 최근 들어 새삼 거론할 필요가 없다. 대신, 남편의 내적 욕구불만에 주목해야 한다.
밖에서 뜻대로 안 풀리면 집에 돌아와 아내를 꺾어 이기고 싶은 욕구가 강해진다. 다만, 자신의 욕구불만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기에는 사회적 체면이나 명분 때문에 마음에 걸린다. 그래서 누가 봐도 그럴듯한 종교문제로 투사시켜 시비를 거는 것이다. 사상의학에선 지나친 자긍심이나 자신의 뜻대로 주변을 부리려는 교만함을 욕구불만의 근본 원인으로 본다.
환자에게 “교회에 가고 싶거든 평소 남편의 말에 진심으로 귀기울여라”고 주문했다. 남편의 작은 욕구를 아내가 무시할수록 눈덩이처럼 커지기 마련이다. 꼭 해결책을 주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답답하고 억울할 때 가까운 사람의 공감만으로도 큰 힘이 된다. 욕구불만의 억압수위가 낮아져야 엉뚱한 것으로 시비하는 마음도 사그라진다. 얼마 뒤 환자는 “이젠 두시간 예배만 보고 빨리 돌아오면 되고 굳이 절에 가자는 말도 하지 않는다”면서 웃었다.
때로는 내 아내니까 내 맘대로 라고 착각한다. 내 방식대로 끌고 가려는 마음의 밑바닥에 어떤 욕구불만이 있는지부터 돌아봐야 한다. 그것을 모를수록 자신의 오만한 뜻에 휩쓸려 주변의 의지부터 꺾으려는 조급함이 강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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