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 그러나 스스로 만든 재앙은 피하기 어렵다. 실패가 두려워 작은 선택조차 못하는 우유부단함은 스스로 만든 것이기에 때로 더 혹독한 대가를 치른다.
강박증으로 내원한 주부. 진료예약을 했다가 취소하길 수차례나 반복했다. 아파트 문을 잠그지 않았다는 불안감에 외출 도중 몇 번이고 집으로 돌아간다. 아침 세수만 하는데도 1시간 넘게 걸린다. 점점 일상의 사소한 결정조차 어려워진다. 그러다 말로 설명하기 힘든 불안감에 휩싸이며 갑자기 호흡곤란까지 이어진다.
사상의학적으로 소음인의 불안정지심(不安定之心)이 심해진 상태다. 물론 이런 불안이나 우유부단함은 다른 체질에서도 나타난다. 태음인은 경험치가 없는 낯선 상황에서 겁이 나면 어쩔 줄 모른다. 이때는 판단 자체를 아예 미루고 모르쇠로 버티려 한다. 이에 비해 소양인은 상황판단이 빠르다. 다만, 추후 책임소재의 유·불리를 놓고 주변 분위기를 보느라 일부러 시간을 끈다. 태양인은 급해서 문제이지 우유부단하진 않다. 그러나 소음인은 판단을 내렸다가도 다시 생각하면 결론이 달라져 또 번복한다. 자신은 물론 주변에서 보기에도 답답하고 우유부단해 보인다.
이런 불안정지심은 어릴 때 경험한 심한 가책이나 욕구 좌절 등이 기저 원인이다. 조금의 실수도 하지 않고 대가도 치르지 않을 완벽한 방법만 궁리한다. 이쪽으로 가자니 저게 걸리고, 저쪽으로 가자니 이게 걱정이다. 소금장수와 우산장수 아들을 둔 어머니처럼 말이다.
치료를 받을까 싶은 순간 곧바로 반대쪽 의심이 일어난다. “100% 확실히 치료될까요”라거나 “치료 후 재발은 전혀 없나요”라며 안되는 이유 찾기에 골몰한다. 불안정지심에서 나온 질문들은 의학교과서를 밤새워 설명해도 소용없다.
결국 환자는 “남편과 상의한 후 결정하겠다”며 돌아갔다. 이후 여러 병원을 방문했지만 치료도 못한 채 수개월 뒤 다시 내원했다. 이젠 심한 불면증까지 왔지만 여전히 미적거린다. 보다 못한 남편의 결정으로 겨우 치료받을 수 있었다.
불안정지심은 삶 자체의 문제다. 이제마 선생 역시 ‘진일보(進一步)하여야 극복된다’는 화두만 던졌다. 한발 앞으로 나아감은 ‘대가’를 치를 각오를 의미한다. 그렇지 않으면 수서양단(首鼠兩端)의 형국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구멍에서 머리만 쏙 내밀고 나갈까 말까 끊임없이 망설이는 쥐처럼 한 치 앞의 진퇴조차 결정하지 못한다.
미래의 결과는 누구도 확신할 수 없다. 일정 부분 하늘에 맡겨야함은 인간의 숙명이다. 기상청의 슈퍼컴퓨터도 내일의 날씨조차 100% 정확히 예측할 순 없다. 최악의 결과를 무조건 피하려고만 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당장 선택에 따른 손해는 없는 듯싶지만 결정하지 못함으로 인한 불안과 강박이라는, 스스로 만든 재앙은 더 혹독하다.
‘문을 안 잠갔으면 어쩌나’ 하는 불안보다 ‘훔쳐갈 것도 별로 없는데 도둑이 들라면 들라지…’라는 배짱이 필요하다. 실패 가능성 제로의 안전한 선택이란 아무리 긴 시간을 더 고민한들 찾아지지 않는다. 도전과 선택은 실패 가능성이 전혀 없어서 하는 것이 아니다. 최상의 결과를 향해, 최악의 경우를 대비하며 용기 내어 한발 나아가는 것뿐이다. 다만 기도할 뿐이다. 이것이 진일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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