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醫學/한방춘추

양심 불량도 문제지만 과한 것도 병


군자는 자신에게서 구하고, 소인은 남에게서 구한다.

화병 치유 역시 마찬가지다. 비록 타인에게 상처받았어도 원망하고 미워하는 마음만으로는 해결책이 없다. 자신에게도 원인이 있음을 이해해야 온전하게 치유할 수 있다.

직장 스트레스로 아침마다 눈뜨기조차 싫다는 20대 여성. 2년차 중학교 교사로 매일 아침 출근을 할까말까 고민한다. 화장실도 못 갈 정도로 일이 많아 방광염까지 생겼다.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고, 코끝은 취객처럼 빨개져있다. 명치와 가슴 한가운데가 꽉 막힌 듯 답답하고 두통, 소화불량까지 온몸 안 아픈 곳이 없다. 전형적인 화병이다.

업무 과다가 원인이었다. 선배 교사들의 일까지 고스란히 떠맡고 있었다. 환자는 “일을 맡긴 선배들은 주식투자에 노래방까지 다니지만, 나는 늦게까지 퇴근도 못한지가 벌써 일년째”라며 울컥한다.

환자는 태음인. 사상의학에서 말하는 ‘사무(事務)’에 능하지 못한 성정이라 인정에 끌려다니기 쉽다. 누가 부탁하면 감당할 수 있을지 따져보지 않고 덜컥 떠맡는다. 그게 착한 거고 좋은 거라 생각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이건 도가 지나치다’ 싶어도 거절 못하고 끌려가며 속앓이를 한다.

전통사회에선 착한 성정으로 통했지만, 요즘 시대엔 단점으로 작용한다. 다른 사람들은 내 마음 같지 않기 때문이다. 나중에 선배를 탓하고 원망한들 분하고 억울한 마음만 곱씹어 화병은 더 심해진다.

환자에게는 태업을 주문했다. 선배들이 자신들의 일까지 떠맡기면 “지금 이런저런 일들이 밀려있어 한참 뒤에나 가능하겠다”라거나 “어디가 아파서 병원에 가야해서 도저히 맡기 힘들다”는 식으로 적절한 이유를 찾아 거절하도록 했다. 일은 항상 계약서를 쓰듯, 어디까지 내 일인지, 책임소재와 뒷감당 여부부터 파악한 뒤에 맡으라고 충고했다.

화병 치료 2주 만에 환자는 “일을 적게 맡으니 몸도 많이 좋아졌는데 이상하게 마음은 불안하다”고 말한다. 과도한 양심 때문이다. 양심 불량도 문제지만 과한 것도 병이다.

인간의 마음에는 원시적인 욕구가 있고 이를 적절히 억제하기 위한 양심이 존재한다. 서로 균형을 이뤄야하지만 환자의 경우 양심이 과한 성정이다. 주로 부성(父性)의 엄격한 훈육에서 비롯된다.

길거리에 휴지 하나 버리지 못하고, 돈을 빌려주고도 갚지 않으면 “갚으라”는 말조차 못한다. 어렵게 “갚으라” 말해도 괜히 말했나 싶어 가책을 느낀다. 남의 일까지 떠맡아 끙끙대면서도 일은 완벽하게 처리하려 애쓴다. 남들이 보기엔 모범생이지만, 정작 자신의 내면 욕구는 그만큼 강하게 억압하기에 내적 갈등이 심해진다.

여기에 타인의 평판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내부시선이 병을 키운다. 다른 사람이 상처주기 이전에 내 마음에서 스스로 만들어 낸 욕심이다.

양심적이고 일 잘 도와주는 후배라는 평판이냐, 그를 포기하고 화병으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이냐 선택하도록 했다. 하나를 버릴 각오없이 다른 하나를 온전히 지켜내기란 어렵다.

웃는 게 웃는 게 아니란 노랫말처럼 태음인들은 좋은 게 좋은 게 아니란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따질 건 따져가며 정확히 해두는 게 진정 착하게 사는 길이다. 그 출발은 남의 시선을 의식한 내 마음의 뿌리부터 자르는 일이다. 그래야 후에 세상 탓 남 탓할 일도 적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