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고사에서 제1세 단군왕검은 종교를 창립하여 삼일신고를 천하에 널리 알리시고, 366사(事)의 신정(神政)으로 정성스럽게 교훈하시니, 그 덕은 천지에 견줄 수 있고 그 밝음은 해와 달과 같았다라고 기록하고 있는 바, 이 글로만 보면 삼일신고를 지은 인물은 단군왕검이 된다.
3. 삼일신고의 저자
삼일신고는 천부삼인(天符三印)과 그 역사를 같이 하는 바, 부도지(符都誌), 삼성기(三聖記), 삼신오제본기, 한국본기(桓國本紀), 삼한관경본기, 소도경전본훈, 신시본기 등의 기록으로 보아 개천(開天)의 주인공인 배달나라 개국시조 거불한 한웅 천왕은 한국에서 천부경, 참전계경과 함께 삼일신고를 지니고 와 백성들을 교화, 치화한 것이 된다.
그렇다면, 삼일신고의 가르침은 당시 글로 된 서책으로 존재하였는지는 아직 불명이나 한국시대에 이미 존재하였던 것이 되는데, 천부삼인의 상징물인 거울, 방울 또는 북, 칼 또는 창과 아울러 홍익인간 이화세계를 실현하는 기본수단이었던 것이다. 논리상으로는 삼일신고라는 가르침은 고(誥)라는 글자에서 이미 배달나라 초기 문자가 되는 녹도문(鹿圖文:鹿書)으로 기록되었다라고 보아야 한다. 고(誥)는 글로 된 말씀이라는 뜻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한편, 삼일신고가 한국에서 말로 전해진 것이라 하기도 하나, 역사논리상으로는 한국시대에 배달나라의 독도문과 같은 수준의 글자는 아니라도 그림식으로 표시되는 부호가 있어 해독해석이 가능한 소통수단이 있었다고 추론이 된다. 왜냐하면, 서기전3897년 이전의 한국시대에 이미 문무의식(文武儀式)이 시행되고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6) 문무의식은 문예(文藝)와 무예(武藝)를 겨루는 의식으로서 곧 시합을 나타낸다. 문예는 곧 말이나 그림이나 글로써 겨루는 것이며, 무예는 몸이나 칼, 창 등의 도구로써 예술(藝術)을 겨루는 것이다.
삼일신(三一神)의 가르침은 글로 표기되기 이전에는 말씀으로 전해진 것이 되고, 이를 글로 옮기니 삼신신고(三一神誥)라고 불리는 것이 된다. 여기서 배달나라 개국 시조 거발한 한웅 천왕이 삼일신고를 지은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서기전3897년경 거발한 한웅 천왕이 한국에서 천부삼인을 전수받아 태백산으로 와서 배달나라를 세울 때 이미 삼일신고는 글로 되어 있었다라고 보아야 하므로 한국시대 한인(桓因) 천제(天帝) 또는 그 이전의 임금이 저자가 될 것이다. 천부삼인은 최소한 서기전6200년 이전에 정립된 것으로 결론이 나는데, 칼은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는 도구이므로, 최소한 서기전6200년 이전에 삼일신고가 그림이나 글로써 표기되었다라고 보는 것도 무리가 아닌 바, 그래서 서기전6200년경부터 한국의 임금이던 유인씨(有因氏) 시대에 삼일신고가 존재하였던 것으로 추론이 된다.
역사기록에서 천부삼인은 서기전6200년 이전에 한국의 임금이던 황궁씨가 정립한 것으로 기록되고, 황궁씨가 유인씨에게, 유인씨가 다시 한인씨에게, 한인씨가 다시 한웅씨에게, 한웅씨가 다시 임검씨(왕검씨)에게 전수한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7)
그래서, 한국시대 황궁씨가 마고시대부터 내려온 천부(天符)를, 홍익인간 세상을 실현하기 위하여 천부삼인(天符三印)으로 정립(定立)하고, 천지인(天地人)이 원래 하나이고 원래 하나로 되돌아가는 것이며, 이러한 삼일(三一), 일삼(一三)의 원리로서 세상을 밝히는 이치의 말씀으로 천부경, 삼일신고, 참전계경의 가르침을 남긴 것이 되는 것이다.
더나아가 천부삼인은 원래의 천부(天符)에다 홍익인간 세상을 실현하기 위한 방법으로써 악(惡)을 제거하는 수단인 칼을 천권(天權) 또는 제왕권(帝王權)으로 더한 상징물이며, 칼은 치화(治化)의 수단이며 참전계경(參佺戒經)은 치화(治化)의 경전이기도 한 바, 천부삼인 이전의 천부는 칼을 뺀 거울과 방울이 될 것인데 이에 해당하는 가르침이 곧 천부경, 삼일신고가 되는 것이며, 이에 삼일신고의 가르침은 마고시대부터 전해진 것으로 결론이 나온다.
삼일신고가 글로써가 아닌 말씀으로서 된 가르침은 서기전7197년 이전의 마고시대부터였다고 결론이 나는데, 이는 마고(麻姑)가 희노(喜怒)의 감정이 없던 신인합일(神人合一)의 신선(神仙) 할미라는 사실에서 곧바로 이해되며, 마고할미가 곧 우리역사상 최초의 삼일신(三一神) 즉 삼신(三神)이며, 삼일신으로서 가르침을 내린 것이고 후대에 이를 글로 남기니 삼일신고(三一神誥)라 하는 것이 된다.
4. 삼일신고 내용
1) 내용 개관8)
삼일신고는 366자의 한자(漢字)로 쓰여졌으며, 천훈(天訓), 신훈(神訓), 천궁훈(天宮訓), 세계훈(世界訓), 진리훈(眞理訓)의 오훈(五訓)으로 구성되어 있다.
천훈에서는, ‘천(天)’에 대한 무가명성 (無可名性), 무형질성(無形質性), 무시종성(無始終性), 무위치성(無位置性) 등 무한성(無限性)을 전제함으로써 천체의 지대(至大)함과 천리(天理)의 지명(之明)함, 천도(天道)의 무궁함을 36자로 가르치고 있다. 종교적인 우주관과 절대성의 개념이 명백하게 밝혀져 있어, 신도(神道)의 달통무애(達通無碍)함을 설명하는 바탕이 된다.
신훈에서는 무상위(無上位)인 신(神)이 대덕(大德), 대혜(大慧), 대력(大力)이라는 삼대권능(三大權能)으로 우주만물을 창조하고 다스림에 조금도 허술하거나 빠짐이 없으며, 인간이 진성(眞性)으로 구하면 머리 속에 항상 내려와 자리한다는 내용이다. 유일무이하고 전지전능한 절대신임을 밝혔고, 동시에 신인합일(神人合一)이라는 달통무애함이 인간의 신앙적 가능성을 열어주는 의의를 가지게 한다.
천궁훈에서는 신교(神敎)에 따라 성통공완, 즉 반망귀진(返妄歸眞:헛된 마음을 돌이켜 참된 성품으로 돌아옴)하는 수행을 쌓아 진성(眞性)과 통하고, 366가지의 모든 인간사(人間事)에 공덕(功德)을 이룬 사람이 갈 수 있는 곳이 천궁(天宮)이다. 여기는 한배검이 여러 신장(神將)과 신관(神官)을 거느리고 있는 곳이며, 길상(吉祥)과 광명과 아울러 영원한 쾌락이 있는 곳이다. 인생이 마지막 찾아야 할 희망처가 천궁이며, 신교가 단순한 기복형(祈福型)의 신앙이 아니고 힘든 수도를 전제로 한 구도형(求道型)의 신앙이 바탕임을 보여준다. 그러나 성통공완이란 반드시 죽음을 통하여 이룩하는 것이 아니요 현세적으로도 가능하며, 뿐만 아니라 이것이 더욱 바람직한 것이다. 실제로 천궁훈에 관하여 대진국 임아상이 단 주해에, “천궁은 천상(天上)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지상에도 있는 것이니 태백산(지금의 백두산) 남북이 신국(神國)이며, 산상(山上)의 신강처(神降處)가 천궁이다. 또한 사람에게도 있으니 몸이 신국이요, 뇌(腦)가 천궁이다. 그래서 삼천궁(三天宮)은 하나이다.”라고 하여, 신인합일적이요 삼이일적(三而一的)인 천궁설(天宮說)을 설명하고 있어, 단순한 내세관과는 크게 다르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세계훈에서는 우주창조의 과정을 설명한다. 우주전체에 관한 내용과 지구 자체에 관한 내용으로 나누어 말하고 있다. 즉, “눈앞에 보이는 별들은 무수히 많고 크기와 밝기와 고락이 같지 않다. 신(神)이 모든 세계를 창조하고 일세계(日世界)를 맡은 사자(使者)를 시켜 700세계를 다스리게 하였다.”는 내용과 “지구가 큰 듯하지만 하나의 둥근 덩어리이며, 땅 속의 불〔中火〕이 울려서 바다가 육지로 되었다. 신이 기(氣)를 불어 둘러싸고 태양의 빛과 더움으로 동식물을 비롯한 만물을 번식하게 하였다.”는 내용인데, 뒤의 부분은 현대과학적인 안목으로도 설득력이 있어 관심을 끌게 한다.
진리훈에서는, 사람이 수행하여 반망귀진하고 성통공완에 이르는 가르침이 주요 내용으로 되어 있어 신앙적인 면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천부경에서 언급하고 있듯이 사람은 삼망(三妄)인 심(心)·기·신(身)에서 벗어나 본래적인 삼진(三眞)인 성(性)·명(命)·정(精)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여기에는 신교(神敎)에 따른 수행이 필요하다. 즉, 심의 감(感)을 지감(止感)하고, 기의 식(息)을 조식(調息)하고, 신의 촉(觸)을 금촉(禁觸)하는 삼법(三法)을 힘써 익혀야 한다. 여기서 지감은 불가(佛家)의 명심견성(明心見性)으로, 조식은 선가(仙家)의 양기연성(養氣鍊性)으로, 금촉은 유가(儒家)의 수신솔성(修身率性)으로 비교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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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을파소 전수, 참전계경 총론 참조
7) 부도지(符都誌) 참조
8) 네이트 삼일신고 참조. 브리테니카 삼일신고 및 대종교 참조. 譯解倧經四部合編(大倧敎總本司, 1968) 및 大倧敎重光六十年史(大倧敎總本司, 1971)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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