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신고(三一神誥)는 역사기록상으로 볼 때 한국(桓國) 시대 한인(桓因) 천제(天帝)의 가르침으로 배달나라 시조 한웅(桓雄) 천왕(天王)에게 전수되었으며, 다시 단군조선 시조 단군왕검에게 전수되었고, 이후 구한말 대종교의 경전으로 전해진 것이 된다. 대진국 제4대 문황제1)가 남긴 삼일신고봉장기(三一神誥奉藏記)2)에 의하면 단군왕검께서 어철궁(御哲宮)에서 삼일신고를 가르쳤다 하며 이때 고시씨가 동해의 물가에서 청석을 캐오고 신지가 글로 새겼다 한다.
삼일신고는 천부경(天符經), 팔리훈(八理訓), 신사기(神事記)와 더불어 대종교의 경전(經典)에 속하지만, 그 중에서도 천부경 다음으로 근원이자 중심이 되는 경전이다. 삼일신고는 1906년 나철(羅喆) 선생이 백봉도인의 제자 백전으로부터 전해 받은 것이라 하며, 1909년 대종교를 중광 시에는 나타나지 않았으나, 이후 경전으로 채택되었던 것이 된다.
삼일신고(三一神誥)는 삼일신(三一神)의 말씀(誥) 즉, ‘三一’은 삼신일체(三神一體), 삼진귀일(三眞歸一)을 뜻하고, 神誥는 신명(神明)의 글로써 하신 말씀을 뜻한다. 따라서 삼일신고는 삼신일체, 즉 삼일신이 지상의 인간세계에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이념을 구현하고, 삼진귀일 즉 지상의 인간이 감식촉(感息觸)의 삼도(三途)를 지감(止感), 조식(調息), 금촉(禁觸)의 삼법(三法)을 한뜻으로 수행함으로써, 심기신(心氣身)의 삼망(三妄)을 성명정(性命精)의 삼진(三眞)으로 되돌려 하나가 되게 하는 성통공완(性通功完)의 공덕을 쌓아, 영원한 쾌락을 누리는 천궁(天宮)에 드는 가르침을 신명(神明)께서 분명하게 글로 전한 말씀이 된다.
1. 삼일신고의 전수과정
1) 한배달조선의 천웅도(天雄道) 경전(經典)
삼일신의 가르침인 삼일신고는 역사기록상 천부삼인(天符三印)의 역사와 같이 한다. 서기전3897년경 배달나라를 개국한 한웅천왕은 한국에서 천부경, 삼일신고, 참전계경을 전수받아 왔던 것이며, 이 세가지 경전으로써 짐승과 다름없던 웅족과 호족을 온전한 인간이 되도록 가르쳤던 것이 된다.
이로써 삼일신고는 천부경, 참전계경과 함께 이미 서기전7197년경부터 서기전3897년경 사이에 존재하였던 한국(桓國)의 경전이었던 것이 되며, 한웅(桓雄)은 곧 천웅(天雄)으로서 한국에서 천웅도(天雄道)를 닦았던 인물이 된다.
배달나라 시조 거발한(居發桓) 한웅이 한국 말기에 지위리 한인 천제의 명을 받아 천부삼인(天符三印)을 전수받고 천웅(天雄)의 무리 3,000을 이끌고 한국의 지방(地方)이 되는 태백산(太白山)으로 내려와 신시(神市)를 열어 배달나라를 세우고, 당시 전쟁을 일삼아 세상을 시끄럽게 하던 웅족(熊族)과 호족(虎族)에게 인간이 돼라는 가르침을 준 것을 시작으로 홍익인간 이화세계를 실현하였던 것이다.
이후 삼일신고는 천부경, 참전계경과 함께 배달나라의 3대경전으로서 천웅도(天雄道)를 실현하는 원리경(原理經)이었던 것이며, 천웅도를 닦았던 단군왕검이 홍익인간 이화세계를 재구현하기 위하여 조선을 개국하였던 것이고, 이후 삼일신고는 북부여, 고구려를 이어 대진국에까지 전수되었던 것이고, 우역곡절을 겪으면서 지금에 이른 것이다.
2) 고구려에서 대진국까지
대진국 제4대 문황제(文皇帝)가 남긴 삼일신고봉장기(三一神誥奉藏記)에는 삼일신고가 단군조선에 전해진 경위와 은왕족 기자(箕子)에게 은문(殷文)으로 전해진 경위 그리고 고구려 때 번역된 사실과 함께 유실(遺失)되지 않도록 문황제가 각별히 노력한 경위가 실려 있다.
3) 대진국에서 대종교까지
대진국 제4대 문황제가 삼일신고를 태백산 보본단 석실에 비장한 이후, 1,300여 년이 지나도록 찾지 못하고 있다가 백두산에서 수도하던 백봉신사가 10년을 도천(禱天)하고 한배검의 묵시(默示)를 받아 찾아낸 다음, 뒤에 대종교 초대교주가 될 나철에게 비전하게 되었다고 전하여진다.3) 그 전해진 경위는 아래와 같다.
1906년 1월 24일 오후 11시경에 당시 구국운동으로 동분서주하던 나철(羅喆) 선생이 일본에서 귀국하여 서대문역에 도착해서 세종로 방향으로 걸어갈 때, 한 노인이 급히 다가와서, “그대가 나철이 아닌가?” 하고 묻고는 “나의 보명은 백전(伯佺)이요 호는 두암(頭巖)이며 나이는 90인데, 백두산에 계신 백봉신형(白峯神兄)의 명을 받고 공(公)에게 이것을 전하러 왔노라.” 하면서 백지에 싼 것을 주고 총총히 가버렸다 한다. 나철 선생이 나중에 풀어보니 삼일신고와 신사기가 한 권씩 들어 있었는데, 이 책의 본문 앞에는 대진국 고황제(高皇帝)의 어제삼일신고찬(御製三一神誥贊)이 있었다. 또 그 앞에는 고황제의 아우인 대야발(大野勃)의 삼일신고서(三一神誥序)가 있으며, 본문 뒤에는 고구려 개국공신인 마의극재사(麻衣克再思)의 삼일신고독법(三一神誥讀法)4)이 있고, 끝으로 대진국 문황제(文皇帝)의 삼일신고봉장기(三一神誥奉藏記)가 붙어 있었던 것이다.
2. 삼일신고의 판본
1) 고문석본(古文石本) - 청석본(靑石本) - 석본(石本)
삼일신고는 단군왕검이 팽우의 무리들에게 가르칠 때, 고시(高矢)가 동해 물가에서 청석(靑石)을 캐어 오고, 신지(神誌)가 그 돌에 고문(古文)으로 새겨 전하였는데, 이것이 고문석본(古文石本)으로서, 청석본 또는 석본이라 하기도 한다. 이 석본은 이후 부여가 소장하였다가 전쟁 등으로 소실되었다고 한다.
2) 은문 단목본(殷文檀木本) - 단목본(檀木本) - 단본(檀本) - 은문본(殷文本)
후기 단군조선 시대인 서기전1120년경 은나라가 주나라에 망하고 은왕족 기자가 단군조선에 망명한 후, 기자가 법학자 왕수긍(王受兢)을 초빙하여 삼일신고를 부탁하니, 이에 왕수긍이 은문(殷文)으로 단목(檀木)에 새겨 주어 읽게 하니, 이것이 은문단본(殷文檀本)으로서, 단목본 또는 단본이라 한다. 이 단본은 이후 번조선에서 위만조선으로 전해졌으나 전쟁 등으로 소실되었다 한다.
3) 고구려 역본(譯本) - 한문본(漢文本)
이후 고구려 때에 삼일신고를 번역(飜譯)한 것이 전한 것이 있다라고 삼일신고 봉장기에서 기록하고 있는데, 고구려 때에는 기록방법으로 소위 한문(漢文)을 사용하였던 것이 되므로, 이때의 삼일신고는 한문본(漢文本)이 된다. 한문본의 원본은 아마도 단군조선 초기에 사용된 고문(古文)으로 된 청석본이나 단군조선 후기에 사용된 은문(殷文)의 단목본이 아닌, 이후에 만들어진 부예(符隸) 등 다른 서체로 전해진 것을 한문으로 번역한 것이 될 것이다.
4) 대진국 어찬진본(御贊珍本) - 태백산 보본단 석실본(石室本)
대진국 제4대 문황제가 남긴 삼일신고봉장기에 문황제가 삼일신고 어찬진본(御贊珍本)을 태백산 보본단 석실에 보장하는 경위를 적고 있는데, 여기에 보관된 삼일신고가 대진국 석실본이다. 대진국 제4대 문황제는 조부인 태조 대조영 성무고황제의 찬문과 반안군왕 대야발의 서문과 고구려 마의 극재사의 독법 등을 엮고, 자신의 봉장기를 덧붙여서 어찬진본(御贊珍本)을 만들었다. 문황제는 전대에 석본과 단본이 모두 유실되어 후세에 전하지 못함을 안타깝게 여겨, 서기739년인 대흥(大興) 3년 3월 15일 태백산(백두산) 보본단(報本壇) 석실(石室) 안에 비장(秘藏)하였던 것이다.
그외 고경각(古經閣)의 신사기본(神事記本)과 천보산(天寶山)의 태소암본(太素菴本) 또는 한단고기 태백일사본(太白逸事本)5)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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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황제 대흥3년(서기719년) 3월 15일(어천절)
2) 삼일신고 봉장기(三一神誥奉藏記) 謹按 古朝鮮記 曰 三百六十六甲子 帝握 天符三印 將 雲師雨師風伯雷公 降于 太白山檀木下 開拓山河 生育人物 至 再週甲子之 戊辰歲上月三日 御喆宮誕訓 神誥時 彭虞率 三千團部衆 俯首受之 高矢採 靑石於東海濱 神誌劃 其石而傳之 後朝鮮記 箕子聘 一土山人 王受兢 以殷文 書神誥于 檀木板而 讀之然則 神誥原有 石檀二本 而世傳 石本藏於 餘國庫 檀本則爲 衛氏之有 竝失於兵燹 此本乃 高句麗之 所譯傳而 我高考之 讀而贊之者也 小子自 受誥以來 恒恐失墮 又感石檀 二本之爲 世波所盪 玆奉 靈寶閣 御贊珍本 移藏于 太白山 報本壇 石室中 以爲 不朽之資云爾 大興三年三月十五日 藏
3) 대종교에까지 전하여진 경위는 백두산의 백봉과 백전 등 32인이 1904년 10월 3일에 발표했다는 단군교포명서(檀君敎佈明書)에 밝혀져 있다.
4) 삼일신고 독법(三一神誥讀法) 我言衆 必讀神誥 先擇淨室 壁揭原理圖 盥漱潔身 整衣冠 斷葷穢 燒栴檀香 斂膝跪坐 黙禱于一神 立大信誓 絶諸邪想 持三百六十六顆 大檀珠 一心讀之 正文 三百六十六言之原理 徹上徹下 與珠 合作一貫 至三萬回 灾厄漸消 七萬回 疾疫不侵 十萬回 刃兵可避 三十萬回 禽獸馴伏 七十萬回 人鬼敬畏 一百萬回 靈哲指導 三百六十萬回 換 三百六十六骨 湊 三百六十六穴 會 三百六十六度 離苦就樂 其妙 不可彈記 若 口頌心違 起邪見 有褻慢 雖 億萬斯讀 如入海捕虎 了沒成功 反爲 壽祿滅削 禍害立至 轉墮 苦暗世界 杳無 出頭之期 可不懼哉 勗之勉之
5) 단단학회, 《환단고기》, 광오이해사,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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