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실
'매화 매(梅)' 자의 고문(古文)은 '모(某)'다. '살구나무 행(杏)' 자를 뒤집어 쓴 것이라는 설도 있다. 매화나무와 살구나무가 모두 장미과에 속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옛사람도 매화를 살구의 한 종류로 보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매화는 살구꽃과 비슷하며, 열매도 살구와 비슷하다.
살구 씨에는 시안산이 포함되어 중독 증상이 자주 보고된다. 그러나 살구 씨를 조금 복용하면 체내에서 천천히 분해되어 미량의 시안화수소산(hydrocyanic acid, 청산)이 만들어져 오히려 호흡 중추의 작용을 진정시켜 기침을 멎게 하는 효능이 있다. 독이 약의 효능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살구 씨를 짜서 기름을 내어 콧속에 바르면 비염 증상도 완화시킨다.
매실도 풋 익은 푸른 매실을 이용해 여러 가지 원액을 만들거나 백매, 오매를 만든다. 그 속에는 살구 씨처럼 시안산이 함유되어 있다. 아직 설익은 푸른 매실은 풋사과처럼 배탈이 나거나 중독 증상을 일으키게끔 되어 있으며, 그것은 매실이 2세(종자)를 보존하기 위해 자신을 지키는 독소이다. 그 독소를 소금에 절이거나 불에 굽고 말리거나 해서 약물로 쓰는 것이 바로 백매와 오매다. 또 설탕물을 이용하여 삭인 것이 매실 원액이다.
매실의 효능은 과학에 의해 새롭게 재조명되어 건강 식품으로 각광받는다. 매실에는 구연산이 19%, 사과산이 1.5% 포함되어 있으며 구연산이 피로 회복에 좋고 알칼리성으로 체질 개선 효과가 있다고 밝혀졌다. 뿐만 아니라 매실이 소화 불량과 위장 장애를 없애고 피부 미용에 좋다고 하여 그 효능이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고 있다.
매화는 사군자 중의 하나로 매서운 추위를 뚫고 향기로운 꽃을 피우는 선비의 지조나 ,늙을수록 농밀한 향기를 풍기는 오래된 우정을 상징한다. 한편으로는 세속적인 의미도 있다. 사랑에 빠진 연인들이 주위의 반대나 역경을 극복하고 불변의 마음, 더 나아가서는 매가 남녀를 맺어주는 '중매(媒)'나 아이를 배는 '임신 매(腜)' 자와 연결되어 상대에게 던져 사랑하는 마음을 전하거나 몰래 만나는 암호로도 사용되었다.
<한의학> 의서에서 매실의 효능을 기록한 문장은 한편의 시(詩)와 같다.
"봄이 오기 전에 매(梅)는 꽃을 피우며 얼음과 눈을 흡수하여 스스로를 적신다. 따라서 매화나무는 얼음처럼 차가운 한수(寒水)로 불꽃같은 욕망인 상화(相火)를 억제한다. 마음을 안정시키고 입이 마른 것을 촉촉하게 하고 가슴이 답답한 것을 없애준다."
<본경소증>은 그 부작용에 대해서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우리가 갈증을 느낄 때 매실이라는 말만 들어도 입에 침이 나온다. 매실은 가장 빠르게 진액을 만들어준다. 그러나 그 진액은 공짜가 아니다. 내부에 있는 액을 끌어올리는 것이며 내부의 액은 우리 몸의 액의 근원인 신장에 있는 생명의 액이다. 자꾸 액을 끌어올리면 신장 기능이 허약해지며 그 결과 신장이 주관하는 치아가 손상된다. 근육도 상하고 위장도 부식하여 허약해진다. 부작용을 극복하기 위해 치아가 약해지면 호도 육을 씹어 먹어라."
한의학에서는 음식도 약의 연장선이다. 그래서 섭생의 중요성을 무엇보다 강조한다. 이런 특징은 감기를 앓을 때 잘 드러난다. 감기에 권장하는 음식은 콩나물국, 김칫국, 파뿌리 등으로 몸을 따뜻하게 하고 배설을 촉진하여 바이러스를 땀이나 대소변으로 쫓아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음식을 바라보는 한의학은 식의학에 가깝다. 예부터 전해지는 '의식동원(醫食同源)'이라는 말은 '몸에 좋은 것을 먹는다'는 차원이 아니라 '내 몸에 맞는 병의 치료나 예방에 효과가 있는 음식을 먹는다'는 적극적 의미의 치료다.
식품이 약에 가까울수록 식품을 먹어서 좋은 사람과 안 될 사람의 편차는 당연히 존재한다. 다른 사람이 효험을 봤다고 해서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것은 오히려 건강을 해칠 수 있으므로 한의학적인 견해에 대해 귀 기울이고 식견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건강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 대한 고민과 관심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매실은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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