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게 피는 열꽃, 갱년기
갱년기로 인한 질병의 범위는 아주 넓다. 이 때문에 갱년기에 대한 이해는 복잡한 여성 질환의 맥을 짚는 것과 마찬가지다.
일본 작가 야마다 가나코의 단편 소설집의 제목인 "아가씨와 아줌마 사이"는 "여자는 약하지만 엄마는 강인하다"라는 말을 재미있게 표현한 제목이다. 그런데 아가씨와 아줌마 사이에 진짜 차이가 존재할까? "남성, 여성 그리고 아줌마가 있다"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지 않은가?
진화의 관점에서 보자면, 어떤 생명체도 자신의 몸에 가지고 있는 자원은 제한적이다. 한 생명체라도 생의 단계에 따라서 자원을 쓰는 방식이 달라진다. 예를 들자면, 아가씨는 자궁과 유선에 모든 에너지를 집중한다. 최상의 짝을 고를 수 있도록 준비를 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에너지를 덜 분배하는 손, 발, 다리는 허약할 수밖에 없다.
아줌마는 다르다. 아줌마는 더 이상 자궁, 유선과 같은 여성성에 자신의 에너지를 투자하지 않는다. 아이를 먹이고 키우며 보호하는 데 에너지의 상당 부분을 쏟아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인류에게 진화의 흔적을 남기는 데 결정적인 기간이었던 수백만 년 전 아프리카 사바나에 있을 때는 더욱더 그랬을 것이다.
지금이야 법적으로 부부 관계를 통해서 가족의 형태가 지속되지만, 그 때만 하더라도 수컷(남성)들은 가능한 한 많은 암컷(여성)들을 임신 시킨 후 도망갔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뱃속의 아이를 보호하고, 더 나아가 아이가 제몫을 할 때까지 키워야 하는 일을 짊어진 아줌마는 이제 남성처럼 강인해져야 할 필요가 있었다.
갱년기는 여성성이 남성성으로 전환되는 극적인 시점이다. 한의학으로 볼 때 여성이 음(陰), 남성이 양(陽)이라면, 갱년기는 음의 성질인 여성성이 줄어들고 양의 성질인 남성성이 극대화되는 시기다. 즉, 몸의 양기 때문에 열이 위로 올라오는 것이다. 나는 이런 현상을 가스레인지 위의 주전자에 빗댄다.
여성의 자궁은 음의 성질을 가진 혈액이 머무는 곳이다. 음의 성질을 가진 찬 기운이 한 곳에 머물면 굳기 마련이므로, 혈액은 순환을 해야 하는데 그것을 생리 현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월경이다. 그리고 여성의 몸 안의 양기는 이런 순환을 하는 힘의 근원이다. 그런데 갱년기가 되면 자궁에 머물러야 할 혈액이 줄어들면서, 이런 순환이 멈추게 된다.
몸에서 용도가 없어진 양기는 위로 올라올 수밖에 없다. 갱년기 여성이 남편과 티격태격하는 일이 많은 것도 이렇게 양기가 뻗치는 사정과 무관하지 않다. 더구나 열기가 위로 올라와서 여러 가지 질병이 생긴다. 귀에서는 이명, 어지럼증, 얼굴에서는 안면 홍조가 생기고 두통, 흥분, 열감으로 고생하며 그 결과 식은땀, 불면증이 생긴다.
인체의 상하 중 위로 열이 몰리면서 아래는 차가워지고 기능이 떨어지면, 방광에 소변을 저장하지 못하는 빈뇨 증상, 시원스레 내보내지 못하는 불쾌감, 성기능 저하, 변비 등 여러 가지 증상이 복합적으로 나타난다. 이런 증상에 가장 적합한 약은 무엇일까? 보통 '가미소요산' 처방이 으뜸으로 꼽힌다.
<한방치료백화>의 한 장('矢數道明')은 이 처방에 대한 치료 효과를 여러 차례 검증한 결과를 보여준다. 갱년기 장애에 가미소요산을 43례에 걸쳐 투여했더니 유효 25, 불명확 8, 악화 3, 중지 7의 결과를 얻어냈다. 절반 이상의 환자에게 상당히 좋은 효과를 본 것이다. 가미소요산을 처방은 환자의 상태를 자세히 기술한 내용도 나온다.
"머리가 지근지근해서 어지럽고 목덜미가 뻣뻣해졌다. 차만 타면 멀미를 하고, 전차 안에서 특히 어깨가 심하게 뻣뻣해, 상태가 심할 때는 전신에 땀이 흘러나오는 정도로 기분이 나빠지고 몸이 웅크려진다. 사소한 일에도 화가 나, 기(氣)가 역상해서 흥분하며 주변 일에 신경이 쓰인다."
이 환자는 가미소요산의 10일분 복용으로 호전되었다. 특히 이 책은 "이 처방은 '화제(和劑)'일 뿐"이라며 "병을 확실히 고치는 것이 아니라 몸의 다른 부분과 조화를 이루게 하는데 목적이 있다"라고 과신을 경계한다. <조선왕조실록>에도 화병을 심하게 앓는 정조가 강명길의 도움으로 이 처방을 복용하고 나서 많은 효험을 보았다.
흔히 갱년기 질환을 치료하고자 무조건 여성 호르몬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이 가미소요산은 이런 여성 호르몬의 과용을 막고, 갱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는데 도움을 주는 처방이다. 나 또한 이 처방의 덕을 많이 보고 있다. 여성의 알레르기 비염, 이명, 어지럼증 등 이비인후과 질환의 배후에 갱년기 장애가 있는 경우가 많음을 오랜 경험으로 알아챘기 때문이다.
알레르기 비염, 이명, 어지럼증 등으로 고생하던 중년 여성이 아주 심한 경우가 아니라면 단 국민건강보험의 적용을 받는 단 몇 천 원의 가미소요산 처방만으로도 큰 효과를 본 예가 수없이 많다. 수천 년의 지혜가 축적된 한의학의 힘을 새삼 느끼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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