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醫學/멘탈 동의보감

‘태양인 기질의 전형’ 박정희




삶이 고단할수록 인간은 영웅을 갈구한다. 자신의 내면에서 숭고한 특질을 발견하기보다, 그저 멀리서 영웅을 추앙하는 것이 훨씬 쉽기 때문이다. 슈바이처가 되기보다 슈바이처 같은 영웅이 내 문제를 해결해주리란 환상에 젖는다. 박정희 전 대통령(사진)에 대한 향수도 그런 예다. 고도 경제성장과 강력한 리더십을 말하며 그를 무덤 밖으로 불러낸다. 박정희 리더십은 태양인 기질의 전형이다. 태양인은 직관 기능이 뛰어난 반면, 주위를 배려하는 감각이나 합리적 사고 기능은 떨어진다. 직관이란 미래에 일어날 일에 대한 무의식적이며 본능적인 파악이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공과는 대부분 태양인의 장단점과 일치한다. 전투정보 장교 당시 그의 정보 예측은 번번이 들어맞아 큰 신망을 얻었다. 심지어 1949년엔 전면 남침 가능성까지 예고했다. 미군도 짐작 못한 상황에서 그의 예측은 매우 정확했다. 이처럼 전시상황이나 급박한 혼란기에 미래 조짐에 대한 직관적 파악이 바로 태양인의 재주다. 경제개발의 큰 방향 설정 등 재임 중 성과들이 이런 기질과 연관된다.

그러나 태양인은 자신의 직관에 대한 확실성과 급박한 마음이 강하다. 주변 반대에 부딪히면 대화나 설득보다, ‘내 말 안 들으면 죽어!’라는 식의 ‘벌심(伐心)’이 생긴다. 어려서 몸집도 작았지만 반장인 자신의 지시를 어기면, 키가 한 뼘 이상 큰 아이들도, 장가까지 간 나이 많은 친구들도 인정사정없이 뺨을 때렸다고 한다. 그래서 당시 별명이 ‘대추방망이’였다. 이런 기질은 성인기에도 고스란히 이어진다. 군대 상관이라도 극단적 방식으로 충돌했다. 심지어 미국 카터 대통령 방한 시에도 장시간 한국이 처한 국제안보상황만 언급해 카터의 감정을 상하게 했을 정도다.

태양인은 구체적 과정과 절차를 무시하기 쉽다. 5·16 쿠데타와 유신 단행이 대표적인 예다. 설명이나 토론보다 무조건 내 말대로 따라오라는 식이다. 종종 주변 처지와 여론을 전혀 의식하지 않을 정도의 무모함을 보인다. 부마사태 확산 조짐에 “서울로도 확산되면 직접 발포명령을 하겠다”고 말했다. 자신의 큰 뜻을 몰라주면 민주적 절차의 무시나 대량학살조차도 상관없다는 식이다. 그래서 그는 ‘몰 민주주의자’로 평가받는다. 우월한 엘리트가 열등한 국민을 지도해야 한다는 마키아벨리적 권위주의 사상이다. “민주주의고 나발이고 집어치워”라는 그의 말처럼 언제나 말이 아닌 강력한 힘이 필요하기에, 태양인은 유독 권력에 집착하게 된다.

이런 기질은 극단적 영웅주의와도 연결된다. 철두철미한 자기확신과 권위의식, 명령과 복종이라는 수직적 상하관계만을 중시한다. 대등한 입장에서 토론하는 민주주의 방식을 못견뎌한다. 대신 나폴레옹이나 이순신, 일본 군사 영웅을 좋아했고, 히틀러를 “독재자이긴 하지만 영웅”이라며 숭배했다.

그에게 국민이란, 자신의 직관에 한마음 한뜻으로 따르는 존재다. 그는 이것을 발전이라고 인식한 셈이다. 태양인 기질에서 비롯된 그의 리더십에는 분명 빛과 그림자가 존재한다. 하지만 삶의 주체성을 상실한 수많은 이들은 여전히 영웅을 기다린다. 자신의 딜레마를 한 방에 해결해주리란 착각 때문이다.

학점은 엉망이지만 신의 직장이라는 공기업 취직은 포기 못하겠다는 갈등으로 기면증에 빠진 여대생. 시부모가 주는 경제적 지원은 포기하기 싫고 대신 시부모의 개입은 부당하다는 딜레마 속에 거식증이 생긴 주부 등. 이들은 모두 자신의 고귀한 가능성에 대해선 침묵하고, 무덤 속 영웅의 한쪽 특질만 바라보는 의존적 해바라기들이다.

박정희 신드롬이 위험하다는 정신의학적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내 심장과 근육을 움직이지 않고, 그저 좋은 세상이 눈앞에 펼쳐지길 바라는 게으름과 환상을 합리화시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