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야만 된다는 것도 없고, 하면 안된다는 것도 없다. 다만 의(義)에 더불고 따른다.”
공자는 이것이 군자가 천하에서 살아가는 모습이라 전한다. 현대인의 스트레스 역시 이 글귀에 힌트가 있다. 직장 스트레스와 불면증으로 내원한 입사 2년차 남성. 수면제로 겨우 잠은 들지만, 늘 가슴이 답답하고 점점 체력 저하가 심하다. 그는 “30대 늦은 나이에 취업해 아주 좋았지만, 지금은 하루하루가 지옥 같다”며 한숨을 쉰다.
거래처 관리가 주업무다. 문제는 거래처의 요구와 불만을 직장 상사에게 보고해도, 똑 부러지는 답을 내놓지 않는다는 점이다. 거래처에선 숨이 넘어갈 듯 다급한데, 매번 빈손으로 거래처를 돌아야 하는 하루 일과가 죽을 맛이다. 그렇다고 상사에게 화낼 수도 없어 속만 끓인다. 집에서도 늘 혼자 고민하다 불면증이 심해졌다.
흔히 이런 경우 ‘마음을 비우라’고 충고한다. 환자 역시 “마음을 비우려 명상수련도 했지만 소용없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가 비우려 했던 마음은 무엇일까. 사상의학에서 마음은 ‘성(性)’과 ‘정(情)’으로 구분한다. 정은 분노, 슬픔, 기쁨, 즐거움처럼 이미 떠올려진 감정들이다. 반면 성은 이런 감정을 있게 한 본성이다.
환자가 말한 마음이란 ‘정’에 가깝다. 그러나 이미 발한 마음을 비울 수는 없다. 화수분처럼 본성이 정을 계속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직장에서 생긴 불편한 감정을 ‘참아야지…’라며 억누르는 것에 불과하다.
정을 있게 한 근원인 본성을 봐야 한다. 환자처럼 소음인은 지나친 ‘낙성(樂性)’이 문제다. 하나의 문제에 봉착하면 결론이 날 때까지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결론나지 않은 어중간한 상황을 못 견딘다. 또 결론이 나면 빨리 결론대로 되길 바라는 조급증이 심하다.
이런 기질의 치우침을 봐야 비로소 과한 생각이나 마음도 비워진다.
환자의 고민엔 애초에 답이 없다. 아니 굳이 답을 찾아야 할 이유가 없다. 답을 찾으려 고민한 것이 괴로움의 원인이다. 환자에게 “앞으로는 혼자 답을 고민하지 말고, 상사에게 결정을 구체적으로 물어라”고 주문했다.
임금은 머리고 백성은 수족이다. 머리는 하나면 족하다. 사공이 많으면 배는 산으로 간다. 조직도 마찬가지다. 판단할 사람과 판단을 실행할 사람이 필요하다. 입사 2년차가 머리일까, 수족일까? 상사가 미룬 결정을 신입사원이 답을 찾으려 한 것 자체가 난센스다.
‘의(義)’의 속성을 타고나 자기 생각보다 전체 분위기를 가치판단의 우선 척도로 삼는 소양인이라면 어땠을까?
거래처 요구를 정확히 전달하고 상사의 구체적 판단을 기다리면 그뿐이다. 보고를 정확히 했음에도 상사가 판단을 미뤄 추후 잘못되는 일은 전적으로 상사의 책임이다. 환자가 고민할 이유가 없다.
단, 나중에 발뺌하는 고약한 상사라면, ‘내 할 일은 제대로 했다’는 정황증거나 보고서를 남기는 현명함은 필요하다.
환자는 수면제 대신 소음인의 울증을 푸는 한약으로 잠자는 것도 체력도 회복되었다. 한결 밝은 목소리로 “상담받은 대로 했지만 상사도 거래처도 별다른 불만은 없더라”며 “머리무게가 절반쯤은 가벼워진 것 같다”고 말했다.
소음인은 자신의 생각과 판단을 늘 미리 결정하려다 화를 자초한다. 그 중 상당수는 굳이 당장 결정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다. 모든 상황에서 옳고 그름을 분명히 하고픈 소음인의 강박적 욕구는 일종의 콤플렉스다. 이를 봐야 마음도 비워진다.
대신, 좋고 싫음의 관점에서 상대도 함께 좋아할 ‘의(義)’를 추구하면 주변과의 마찰도 스트레스도 덜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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