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醫學/한방춘추

엄마의 학습과욕이 부른 딸의 강박증


후발선지(後發先至). 상대보다 칼을 늦게 뽑지만 먼저 닿는다는 뜻이다.

<장자(莊子)>의 ‘설검(說劍)’편에서 유래한 말로 검도 원리 중 하나다. 출발이 빠르면 무조건 이길 듯 싶지만, 실상 대련을 해보면 그렇지 않다.

강박증과 틱장애로 내원한 여중생. 대기실에서부터 불안한 듯 쉴 새 없이 신장계측기에 올라섰다 내려서길 반복하며 서성인다. 틱장애는 초등 저학년 때도 있었지만 가볍게 넘어갔다. 그러나 1년 전 친구들과 장난치다 머리를 맞은 후 재발했다. 여기에 강박증까지 더해져 자기 방문의 손잡이를 열지 못한다.

“손잡이를 잡는 순간 내 손이 어떻게 될 것 같다”고 말한다. 밤에 자다가 소변이 마려워도 화장실을 못 간다. 문소리에 언니가 깨면 나를 해칠 것만 같다. 결국 밤새도록 끙끙대며 혼자 참다가 옷에 소변을 지리기도 한다.

머리를 다친 건 표면적 원인일 뿐, 엄마의 학습과욕이 근본원인이었다.

엄마는 환자의 언니를 스파르타식으로 가르쳐 명문대에 진학시켰다. 그 뒤 엄마는 환자 역시 직접 엄하게 지도했다. 그 무렵 틱장애가 다시 나타났지만 간과했고 큰딸처럼 계속 밀어붙였다. 결국 강박증으로 학교를 중퇴하기에 이르렀다.

공부할 때 기억나는 일을 묻자 아이는 ‘커피’부터 떠올렸다. 엄마의 기대에 부응하려고 매일 커피로 졸음을 이겨야 했다. 또 언니와 비교하며 몰아붙이는 엄마의 화난 얼굴을 기억했다. 그럼에도 도저히 따라갈 수 없어 초조함에 방문을 열고 나가버리고 싶었던 충동들을 떠올렸다.

막다른 골목에 처한 아이는 결국 자신의 내면으로 꽁꽁 숨어버렸다. 저항조차 힘들었던 분노와 불안이 어두운 특질로 억압되었다가 강박증과 틱장애로 나타난 것이다.

소변조차 맘대로 보지 못하고 하루 종일 집안에만 있는 어린아이로 퇴행한 셈이다. 이처럼 서두르는 마음은 모든 것을 뒤엉키게 만든다.

언뜻, 검을 먼저 들면 빨리 닿을 거라 착각한다. 그러나 무심의 검을 움직이는 건 사람의 마음이다. 목표에 빨리 도달하려고 조급해지는 순간, 검을 쥔 손과 어깨에 과도한 힘이 실린다. 결국 칼 궤적이 필요 이상으로 커져 늦게 출발해도 최단거리를 이동한 간결한 칼에 뒤처진다. 그렇다고 힘만 더 주며 채근할수록 도착은 더욱 늦어지는 것이 검도와 교육의 공통점이다.

다행히 3개월의 치료로 강박증과 틱장애는 해소되었지만, 학교 복귀까지는 더 긴 시간이 필요했다.

자녀를 빠르게 목표에 도달시키고 싶은 마음이야 부모라면 누구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부모의 과욕이 투영될수록 결국 ‘선발후지’가 될 수밖에 없다. 또 단련되지 않은 근력에 큰 궤적의 칼은 상대를 이기기는커녕 자신부터 상하게 만든다.

강하고 빠른 칼은 어깨 힘을 빼는 것에서부터 얻어진다. 이를 위해선 과욕과 겁을 극복해야 한다. 자녀를 통한 부모의 대리만족이 과욕이고, ‘남들도 다 그런데…’라며 ‘내 아이만 뒤처지면 어쩌나…’라며 미리 조바심 내는 것은 겁이다. 평정심을 잃어 상대는 미처 보지도 않고 칼부터 뽑아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격이다.

되는 길은 당장은 늦은 듯 보여도 궁극엔 빠르다. 그래서 선현들은 ‘도(道)’라고 이름했다.

조기교육 사회풍조를 탓하며 그것을 면죄부로 삼을 것인가, 지금 느려도 후에 빠른 길을 택할 것인가. 아이들은 부모가 쥔 칼끝에서 용기 있는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