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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史/역사 오디세이

10월 유신 41년…더 무서운 괴물이 솟아나고 있다


10월 유신 41년…더 무서운 괴물이 솟아나고 있다

박정희의 유산, 진정 극복한 걸까

간단한 시사 상식 문제 하나. 다음 문장을 읽고 이것이 대한민국의 헌법 정신과 현대 세계의 민주주의 원리에 합치하는지를 논하라.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국민은 그 대표자나 국민투표에 의하여 주권을 행사한다.

나는 모든 대한민국 국민이 이 문장을 읽자마자 고개를 가로저으며 불쾌해 하기를 바라지만, 과연 그럴지는 솔직히 자신이 없다. 국민이 선거를 통해 대표자를 뽑고 그들이 국민을 대신해 나랏일을 하는 대의민주주의 체제에서 이 문장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는 반응도 있을 것 같아서다.

이 문장은 1972년 11월 21일 국민투표를 통과한 대한민국 헌법 제8호, 이른바 '유신헌법'의 제1조 2항이다. 그해 10월 17일 오후 7시 비상계엄령을 선포한 박정희 대통령은 '특별선언'을 발표해 기존 헌법의 효력을 정지시키고 국회를 해산했다. 그리고 살벌한 분위기 속에 위 문장이 포함된 유신헌법을 국민투표에 붙여 91.9%의 투표율과 91.5%의 찬성률로 통과시켰다.

그해 12월 15일에 선출된 2,359명의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은 23일 장충체육관에 모여 새 대통령을 뽑는 간접선거를 실시했다. 박정희가 단독 후보로 출마한 선거는 2명을 제외한 2,357명이 찬성표를 던지면서 99%의 압도적 찬성률을 기록했다. 2명의 표도 반대는 아니고 무효였다. 도대체 누가 무효표를 던졌을까 하는 게 화제가 될 정도로 일방적이었던 이 선거는 현대 세계에서 보기 드문 기록으로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대한민국 국민은 이렇게 국민투표와 간접선거를 거쳐 자신의 주권을 '대신' 행사해 줄 대표자를 뽑았다. 그 대표자는 단 한 명의 초헌법적 권력자, 박정희였다. 그는 정수의 1/3에 해당하는 국회의원 추천권과 법관 임명권을 장악하고, 긴급조치권과 국회 해산권 같은 초헌법적 권한을 부여받았다. 국민은 그가 취한 비상조치와 특별선언을 제소할 수도 없었고 나중에는 헌법을 바꾸자는 논의조차 할 수 없었다. 박정희는 어떤 면에서는 조선 시대의 국왕을 능가하는 권력자가 되어 죽을 때까지 권력을 놓지 않았다. 반면 그에게 주권을 '양도'(하도록 강요당)한 국민은 그 대가로 전대미문의 전체주의 체제 아래 칠흑 같은 7년 세월을 보내야 했다.

그 시절, 대한민국은 곧 박정희였다

유신 체제가 출범할 즈음 학교를 다니기 시작한 나 같은 사람에게 대한민국은 곧 박정희였다. 우리 세대는 지적으로나 정서적으로 흡수력이 가장 왕성한 시기에 10월유신이 구국의 결단이며 '한국적 민주주의'가 영세불멸의 가치라고 믿으며 자라났다. 유신헌법을 개정하려는 운동이 일어나자 박정희는 1975년 초 헌법 개정 여부를 국민투표에 붙이고 이를 자신에 대한 재신임과 연계했다. 개헌 논의는 봉쇄한 채 '구국의 영웅'이 퇴진할지도 모른다는 선전이 난무하자 당시 국민학생(지금의 초등학생)이던 우리 형제는 부모님께 헌법 유지에 찬성표를 던지라는 은근한 압력을 넣곤 했다.

"아빠 엄마는 어느 쪽에 투표할 거예요?"

"뭐 보나마나 찬성하시겠지."

이런 철부지 자식들에게 부모님은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비밀 투표가 원칙이므로 물어 봐도 안 되고 알려줄 수도 없다며 대답을 피하셨다. 돌이켜 보건대 그 옛날의 히틀러 유겐트가 바로 우리 같은 철없는 자식들의 모습이었을 것 같다.

개헌이 좌절되자 그 '박정희 유겐트'들은 더욱더 강성으로 키워졌다. 스님 수준으로 머리를 빡빡 밀고 다녀야 했던 중학교에서는 수업 전후에 선생님께 단체로 하는 인사말이 "멸공(滅共)!"이었고, 교무실에 담임선생님을 뵈러 가면 입구에서 거수경례를 붙이며 "멸공! 1학년 1반 강응천, 아무개 선생님께 용무 있어 왔습니다!" 하고 힘차게 외쳐야 했다. 혹시 생소한 독자들을 위해 팁을 달자면 '멸공'은 '공산당 박멸'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채 사춘기가 끝나기도 전 어느 가을날, 등굣길에 '대통령 유고'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교실에 들어갔을 때 학도호국단 선배가 교단을 왔다 갔다 하면서 하던 말이 지금도 귀에 선하다.

"아직 발표되진 않았지만 여러 가지를 종합하면 죽은 게 확실한 것 같다. 이럴 때일수록……."

그때 '신은 죽었다'는 생각과 함께 망연자실하는 한편 그 선배에게 '저게 감히 누구한테 죽었다는 말을 함부로 써?' 하는 적대감이 일던 기억이 난다. 자습 시간에 반 친구들과 함께 학교 체육관에 차려진 박정희의 빈소를 참배했다가 반골 기질이 있던 젊은 선생님께 혼찌검이 난 기억도 있다.

그 후 민주주의가 무엇이고 사람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면서, 10월유신이 그와 같은 인간의 천부적인 권리를 얼마나 가혹하게 억눌렀는지 알게 되면서, 박정희에 대한 '신봉'은 '배신감'으로 바뀌었다. 1980년대를 휩쓴 민주화의 열풍에는 그러한 우리 세대의 '배신감'과 그나마 아주 늦지는 않았던 '각성'이 큰 영향을 끼쳤다.

▲ 10.26 당시 국무총리였던 최규하 전 대통령이 1979년 11월 3일 고 박정희 대통령 국장 영결식에서 영전에 헌화, 분향하고 있다.

우리는 정말 10월 유신의 어두운 그림자를 극복한 걸까

다시 첫머리의 시사 상식 문제로 돌아가 보자. 거기 제시했던 문장은 7년간 존속한 유신헌법에만 적혀 있다가 1980년에 개정된 헌법에서 다시 본래의 문장으로 되돌아갔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1948년 제헌헌법부터 자명한 것으로 명시되어 있던 이 문장이 유신헌법의 해당 부분과 얼마나 다른지 모를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1980년대 말 천신만고 끝에 민주화를 이룩한 한국인은 과연 그 차이를 근본적으로 극복했을까? 우리는 양도할 수 없는 천부적 권리를 강탈당했던 10월 유신의 끔찍한 기억으로부터 확실히 탈출한 것일까?

10월 유신의 도발은 한국인에게 저 단순명료한 문장의 의미를 깊이 음미하고 그 진정한 실현의 방도를 고민하게 만들었다. 유신헌법은 국민의 천부적 주권을 오로지 선거 때만 발휘되는 것으로 못 박았고, 실제로는 그마저도 형식적인 것으로 박제화 했다. 그렇다면 오늘날 한국인은 자신에게 있는 주권을 제대로 발휘하고 있으며, 자신에게서만 나오는 권력을 제대로 행사하고 있는가?

이 물음에 자신 있게 '그렇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대부분이 알게 모르게 타성에 젖어 어쩌다 한 번 투표하는 것으로 주권 행사를 갈음하고 있으며, 선거 때 유권자들에게 목을 매던 '대표자' 지망생들은 일단 당선되고 나면 국민에게서만 나올 수 있는 권력이 자신에게 오기라도 한 것처럼 목을 뻣뻣이 세우고 다닌다. 우리의 민주주의가 이런 수준이라면 헌법의 제1조 2항은 유신헌법의 명문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2012년 4.11총선 때의 일이다. 부산에서 문재인 민주당 후보의 대항마로 나선 손수조 후보가 '청년 평균 연봉'인 3000만 원만 가지고 선거 운동을 하겠다고 약속했다가 이를 파기하고 거짓말 파문에 휩싸인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진정한 국민주권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3000만 원이라는 큰돈이 한 지역구의 선거를 치르기에도 턱없이 모자라는 현실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근본적인 해결을 모색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당시 야당 쪽에서도 손수조라는 젊은 정치인의 부도덕성만 공격할 뿐 이 근본적인 문제를 거론하는 사람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이 해프닝을 통해 '국민의 대표'가 되려는 사람은 천문학적인 액수를 동원할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현실만 공인되고 말았다.

거액의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소수의 사람들만이 국민의 대표 노릇을 하겠다고 나설 수 있는 현실, 그렇게 선출된 '국민의 대표'가 주권자인 국민의 종노릇을 하기는커녕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현실이 과연 헌법 정신에 합치되는 민주주의 사회일까? 우리는 정말 10월 유신의 어두운 유산을 온전히 극복한 것일까?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자 유신의 부활을 걱정하는 목소리들이 적지 않았다. 그런 걱정을 접하면서 유신 체제를 돌아보면 정말이지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정도의 자유와 민주주의가 어디냐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역사는 똑같은 방식으로 되풀이되지 않는다. 10월 유신이 훼손한 국민주권의 정신을 근본적으로 성찰하고 실현하지 않는 한 우리는 지금도 유신의 그림자 속에서 살고 있는 셈이다.

우리 모습을 돌아보자. 연례행사 같은 투표 행위를 통해 내 천부적 주권을 '대표'들에게 양도한 것으로 치부하고 있지는 않은가? 권력이란 나와는 무관하고 청와대와 국회로부터 나오는 것이라는 '반헌법적' 관념에 젖어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돈이 아주 많지 않으면 권력을 행사할 기회가 원천 봉쇄되는 게 당연하다는 체념에 빠져 있지는 않은가? 부의 양극화가 나날이 심화되어 가고 있는 오늘날, 그런 사고방식들은 10월 유신보다 훨씬 더 크고 무서운 괴물이 솟아나는 토양이 될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