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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史/역사 오디세이

'단군이 오래전 건국', 그것만 자랑할 건가

'단군이 오래전 건국', 그것만 자랑할 건가

개천절에 되새겨보는 홍익인간 이상

10월 3일은 기원전 2333년 단군왕검이 우리 민족 최초의 국가를 세운 날이다. 이렇게 심원한 국경일이 있는데 몇 십 년밖에 안된 1948년 8월 15일을 굳이 건국절로 지정하자는 사람들은 뭘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틀 전인 10월 1일, 중국은 1949년 그날의 건국을 기념하는 국경절을 맞아 13억이 시끌벅적한 일주일 휴가에 돌입한다. 우리의 개천절은 그것보다 70배나 오래된 셈이니 70주 휴가는 아니더라도(그러면 매일 놀고도 남을 테니까) 70일 정도는 놀아야 단군의 위업을 제대로 새길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민족 종교인 대종교에서 말하는 개천절은 단군의 건국일이 아니다. 단군의 아버지인 환웅이 하늘을 열고[開天] 지상으로 내려온 기원전 2457년 10월 3일이라고 한다. 연대를 이렇게 정한 사람은 동양 전통의 상수학(象數學)에 능통한 사람이다. 상수학에 따르면 역사가 180년마다 순환하는데, 그 사이클은 상원갑자(上元甲子) 60년, 중원갑자(中元甲子) 60년, 하원갑자(下元甲子) 60년을 경과한다. 환웅이 하늘을 열었다는 기원전 2457년은 상원갑자의 첫해인 갑자년에 해당한다.

이렇게 보면 단군의 개국이 우주적인 시간의 크기로 다가오는 것 같다. 하지만 현대 역사학의 눈으로 보면 그렇게 먼 옛날 일도 아니다. 이미 기원전 3500년에는 이집트, 이라크 등에서 도시 형태를 갖춘 국가가 등장해 있었고, 그보다 훨씬 오랜 기원전 8000년 무렵에는 인류를 괴롭히던 빙하시대가 막을 내리고 곳곳에서 농경과 목축이 시작되었다. 기원전 2333년에 국가를 세웠다는 게 특출한 것도 아니고 참람한 것도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런데 우리 학계에는 그 시기가 만주나 한반도에 국가가 세워지기에는 일렀다는 견해가 제출되어 있다. 고고학의 연구 성과에 따르면 그때는 아직 국가가 탄생할 사회적 환경이 조성되어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근거만 확실하다면 이것도 문제가 될 이야기는 아니다. 일본에는 서기 4~5세기나 되어서야 국가라는 것이 나타났고, 이 세상에는 아직도 국가라는 형태의 사회 조직을 만들지 않고 살아가는 민족이 수없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대 한국에서는 이런 주장을 놓고 심각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단군신화에 명시되어 있는 기원전 2333년의 건국 기원을 부정하는 자는 식민사학자다, 신화를 그대로 역사로 믿으라고 강요하는 자는 국수주의자다……. 학문적으로 차분하게 다루면 될 것을 왜 이렇게 엄청난 딱지까지 붙여 가며 거칠게들 싸울까? 여기에는 아무래도 국가의 탄생이란 것이 역사적으로 대단한 진보라서 기왕이면 개국의 시기가 빠른 쪽이 민족적 자존심을 충족시킨다는 생각이 깔려 있는 것 같다. 과연 그럴까?

  ▲ 단군신화에 담긴 홍익인간 이상은 아직 제대로 실현되지 않았다.
사진은 2009년 12월 6일, 세계국학원청천단원들이 이웃 돕기 기금을 마련하고자 청계광장에서 연 '단군 사랑 희망 나눔' 행사 모습.

 

단군조선 건국 시기를 둘러싼 갑론을박의 속사정

기원전 2333년은 단군신화에 관한 최초의 문헌인 <삼국유사>에 기록된 숫자가 아니다. <삼국유사>는 그해를 중국의 전설적 성군(聖君)인 요(堯)가 즉위한 해로 규정하고, 요가 즉위한 지 50년 만인 기원전 2284년을 단군조선의 원년으로 추정해 놓았다. 기원전 2333년을 고조선 건국 기년으로 한 것은 조금 뒤에 나온 <제왕운기>로, 단군의 건국과 요의 즉위를 같은 해로 보았다. 조선의 성리학자 서거정은 <동국통감>에서 북송 학자 사마광의 <자치통감>을 참고해 요의 즉위 시기를 25년 앞당긴 기원전 2357년에 가져다 놓았다. 오늘날의 단군기원은 <동국통감>을 기준으로 정해진 것이다.

서거정이 조심스럽게 다룬 요는 사실 왕이 아니다. 최소한 중국의 전통적인 군주는 아니었다. 그의 지도자 자리는 세습되지 않고 능력이 뛰어난 순(舜)에 의해 계승되었다. 또 요순이 이끈 것은 국가가 아닌 다른 형태의 집단이었다. 아마도 원시적인 공동체로부터 국가로 나아가는 과도기의 사회였을 것이다. 중국에서 세습 왕조는 순을 계승한 우가 아들에게 자리를 물려주면서 태어났다. 그것이 중국 역사학계에서 최초의 국가로 내세우는 하(夏) 왕조다.

요순이 전설적인 성군으로 일컬어지는 것은 아들보다 더 뛰어난 자에게 지위를 물려준 것과 연관되어 있다. 그들의 치세는 이후 수천 년간 계속된 왕조 시대보다 훨씬 더 민주적이고 구성원 간의 불평등이 적은 시대였을 것이다. 가문에 의해 권력이 독점되지 않으니 재산도 독점되지 않고, 공동체 구성원끼리 반목하고 질시할 일도 적었을 것이다. 그러던 사회가 세습 왕조로 넘어가면서 부와 권력의 독점과 소외,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억압과 항거로 얼룩지기 시작했다.

요순과 동시대로 비정되는 단군은 어땠을까? 신화에는 단군왕검이 1500년 동안 고조선을 다스리다가 기자를 왕으로 봉하고 물러났다는 말이 있다. 한 사람이 1500년 넘게 살았다는 것은 말 그대로 신화다. 그러나 역사학자들은 단군왕검이 개인의 고유명사가 아니라 '대통령'처럼 직책을 나타내는 말이라고 한다. '단군'은 壇君(<삼국유사>)이라고도 쓰고 檀君(<제왕운기>, <동국통감>)이라고도 쓰는데, 몽골어로 하늘이나 무당(사제)을 뜻하는 '텡그리'의 음차이므로 한자의 차이는 무의미하다는 견해가 적지 않다. '왕검'은 대체로 '임금'과 같은 말이라는 데 많은 학자들이 동의하는 것 같다.

단군은 무당이고 왕검은 왕이다? 이게 도대체 무슨 뜻일까? 무당은 옛날 공동체에서 신의 뜻을 전해 주던 지도자이다. 그는 결코 공동체 위에 군림하지 않고 신의 이름으로 공동체를 단결시킨다. 반면 왕은 정치적 지배자, 국가 위에 군림하는 존재이다. 무당이 세상을 성과 속으로 나누고 그 사이를 연결하려 한다면, 임금은 세상을 적과 동지로 구분하고 적에 맞서 동지들을 결속시킨다. 그렇다면 단군왕검은 무당과 왕의 합체, 즉 공동체의 지도자와 국가의 지배자가 한 몸에 합쳐진 존재라는 이야기인가? 그렇게 이야기하는 학자들이 많다. 원시 공동체가 해체되고 국가로 넘어가는 시기에 나타난 제정일치 사회의 지도자가 단군왕검이라는 것이다.

엄밀하게 이야기하면 무당과 왕이 합체된 것이 아니라 왕이 무당의 신성한 권위를 덮어쓴 것이리라. 이제 신과 소통할 수 있는 능력으로 공동체를 통합하고 이끌던 무당의 시대는 가고, 번쩍거리는 청동 검을 치켜들고 신민(臣民) 위에 군림하는 왕의 시대가 온 것이다. 고조선의 가요로 알려져 있는 '공무도하가'는 백발을 풀어헤친 채 강물을 건너다 빠져 죽는 미친 남자를 노래하고 있다. 어떤 학자는 이 그로테스크한 광경 속의 '백수광부(白首狂夫)'야말로 공동체가 해체되면서 권위를 잃어버린 무당의 초상이라고 설명한다.

단군신화는 국가의 탄생 과정을 매우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환웅은 세 개의 천부인(天符印)을 받아들고 세상을 지배하기 위해 내려온다. 학자들은 천부인을 청동기 시대 지배자의 상징인 청동 검, 청동 거울, 청동 방울(또는 옥)로 추측한다. 바람과 비와 구름을 다스리는 풍백, 우사, 운사가 환웅을 따른 것은 환웅이 다스릴 곳이 농경 사회임을 말해준다. 환웅이 곡식, 목숨, 질병뿐 아니라 선악, 징벌 등 360가지 일을 맡아 다스렸다는 것은 그가 이미 '공권력'으로 무장한 권력자였음을 알려준다. 바로 이런 세력이 정복과 통합의 과정을 거쳐 일으켜 세운 국가가 단군의 고조선이었다.

최초의 국가를 일으켜 세운 이들이 무서운 지배자의 면모만 보여준 것은 아니다. 환웅은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弘益人間]'는 위대한 비전을 하늘로부터 받들고 내려왔다. 이것이야말로 우리 민족이 단군신화에 자부심을 갖는 첫 번째 근거이다. 그런 비전만 실현된다면야 무당이 사라지면 어떻고 호랑이족을 인간 취급하지 않고 몰아내면 어떠랴. 그러나 우리가 역사를 통해 알고 있는 바와 같이 고조선 건국 이래 왕이 통치하던 어떤 국가도 홍익인간을 실현하지 못했다. 실현하려는 흉내라도 낸 군주조차 한 손으로 꼽을 지경이다.

'오래전 건국' 자랑 전에 홍익인간 이상 실현부터

최근 1, 2세기 사이에 사람들이 왕을 쫓아내고 공화제를 선택한 것은 공동체를 파괴하고 들어선 왕정 국가에 대한 반성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도자를 국민이 선택하고 국민의 대표들이 그를 감시하는 민주주의의 형식을 도입했다고 해서 미국이, 프랑스가, 대한민국이 홍익인간을 실현했다고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일전에 SBS가 방영한 특집 프로그램은 황금을 쫓으며 빈부 격차를 극대화하고 있는 현대 자본주의 국가의 국민들과 국가 체제를 알지 못한 채 살아가는 남태평양의 섬 주민들을 대비했다. 이 프로그램을 보면 '연대(連帶)'를 금과옥조로 삼아 상부상조하는 남태평양 주민들의 공동체가 미국, 중국 등 강대국보다 훨씬 더 '홍익인간'을 잘 실현하면서 살고 있는 것 같다.

고도로 발달한 문명국가와 홍익인간의 고원한 이념은 결합할 수 없을까? 우리가 이 문제를 진지하게 성찰하고 진정 '홍익인간'을 실현하는 길로 나아가기 전에는,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오랜 건국절을 그저 자랑만 하고 있을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