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나라 시대에 삼륜구서라는 윤리도덕이 정립되어 있었다. 삼륜구서란 세가지 인간윤리에 아홉가지 맹서라는 의미이다.
사람은 사회적 정치적 존재이다. 배달나라 이전의 한국시대에는 상대적으로 국가간의 전쟁이 거의 문제가 되지 아니하였으며 다만 일반 사회적인 윤리로써 충족되던 시대였다. 이에 반하여 배달나라 시대는 제후국들이 경쟁적으로 서로 다투는 시기가 됨으로써 국가에 대한 백성들의 도덕윤리가 요구되었던 것이 된다.
2. 삼륜구서(三倫九誓)
서기전3897년 이전의 한국(桓國) 시대의 오훈(五訓)은 정성과 믿음(誠信), 공경과 근면(敬勤), 효도와 공순(孝順), 청렴과 의로움(廉義), 겸손과 화목(謙和)의 5가지 덕목이며, 이로써 사회가 충분히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배달나라 시대는 한국의 오훈에서 나아가 나라를 지탱하는 기본적인 3가지 윤리에 9가지 덕목이 요구되었다. 3가지 기본윤리는 소위 군사부(君師父)의 도리이다. 즉 임금과 신하, 스승과 제자, 부모와 자식 사이의 윤리가 정립되었던 것이다.
군신(君臣)에게는 의충(義忠)이, 사도(師徒)에게는 교신(敎信)이, 부자(父子)에게는 자효(慈孝)가 3가지 기본 윤리로 요구되었다. 군사부(君師父) 삼위일체 사상은 천지인(天地人) 삼신(三神) 사상과도 통한다. 특히 한인(桓因), 한웅(桓雄), 단군(檀君)은 각 부(父), 사(師), 군(君)으로 상징되면서 또한 모두 임금, 스승, 아버지를 겸하였던 점에서, 군사부의 윤리가 삼륜(三倫)으로서 충분히 납득이 가는 것이다.
9가지 맹서(盟誓)는, 효도(孝道), 우애(友愛), 믿음(信), 충성(忠誠), 겸손(謙遜), 명지(明知), 용맹(勇猛), 청렴(淸廉), 의로움(義)이다. 즉 부모에게 효도하고(孝于家), 형제간에 우애있으며(友于兄弟), 스승과 벗과는 믿음이 있고(信于師友), 나라에 충성하고(忠于國), 무리에게 겸손하며(遜于群), 정사(政事)에 밝게 알고(明知于政事), 전장에서는 용감하며(勇于戰陣), 행동에 청렴하고(廉于身行), 직업에 의로움이 있어야(義于職業) 한다는 것이다.
서기전2697년경 제14대 치우천왕(治尤天王)은 굴복하지 아니하는 유웅국의 헌원(軒轅)을 토벌하기 전에, 81개 종당(宗黨)의 대인(大人)들을 소집하여, 먼저 치우천왕의 형상(形象)을 그려 나누어 주고 목숨바칠 맹서를 하도록 하였다. 이는 헌원을 토벌하는 대의명분을 알리고 반드시 토벌하여야 함을 강조한 것이 된다.
치우천왕은 헌원에게 하는 경고(警告)를 다음과 같이 무리들에게 이르되,
“너 헌구야! 짐의 말을 분명히 들을 지어다! 해(태양)의 아들이 있음은 오직 짐 한 사람일 뿐이며, 만세를 위하여 공동의 옳음을 위하여 인간의 마음을 씻게 하는 맹서를 짓노라! 너 헌구는 우리 삼신일체의 원리를 모독하고, 삼륜구서를 행함을 게을리 하고 버렸으니, 삼신께서는 오랫동안 그 더러움을 싫어하고 짐 한 사람에게 명하여 삼신의 토벌을 행하도록 하였으니, 너는 일찌감치 마음을 씻고 행동을 고칠 지어다! 본성(本性)에서 씨(子)를 구하면 네 머리 속에 내려와 있느니라! 만약, 명령에 순응하지 않으면 하늘과 사람이 함께 노하여 그 목숨이 그대로 있지 않을 것이니, 너는 가히 두렵지 아니한가!”
하였다.
여기서 헌원이 만약 삼륜구서를 성실하게 행하였다면 치우천왕이 헌원을 토벌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나, 당시 헌원은 염제신농의 나라를 탐하였고 권력에 눈이 멀어 치우천왕에게 10년간 73회를 도전하고 합 100회를 도전하였던 것인데, 결국 헌원은 자부선인(紫府仙人)의 가르침을 받고서 진정으로 굴복하여 신하가 됨으로써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삼륜구서와 관련된 단군조선의 기록도 여럿 있다. 서기전2182년 기해년(己亥年)에 을보륵(乙普勒) 선인(仙人)은 제3대 가륵(嘉勒) 단군이 신왕종전(神王倧佺)의 도(道)를 물은 데 대하여, 군사부(君師父)의 도리를 설파하였다.
또 서기전1891년 경인년(庚寅年) 겨울 10월에 제11대 도해(道奚) 단군이 마한(馬韓) 아화(阿火)에게 명을 내려 대성산(大聖山)에 대시전(大始殿)을 세우고 삼륜구서(三倫九誓)의 가르침을 강론하게 하였다. 또 서기전424년 정사년(丁巳年) 3월 16일에 제44대 구물(丘勿) 단군이 삼육대례(三六大禮)를 행하고 구서(九誓)의 모임을 가졌는데 구서(九誓)의 글로써 하였다.
구물단군의 구서는 곧 배달나라 치우천왕이 베풀었던 삼륜구서의 구서이다. 천제(天帝)를 모신 사당(廟)의 뜰에 큰 나무를 세워 북을 매어 달고 3․7일을 기간으로 하여 연령순으로 서로 마시면서 권화(勸化)하고 성책(成冊)하였다. 이 구서의 모임으로 하여 나라의 질서를 바로 잡고 국력을 결집하는 등 치화(治化)를 이루었던 것이다.
이에 풍속은 순박하고 도타움을 숭상하며, 공동을 위한 전쟁에 용감하고, 공동의 이익에 부지런하며, 공적인 일에 민첩하고, 공덕(公德)에 밝으며, 착한 일은 서로 권하고, 잘못은 바로 잡아, 저절로 예의와 의로움과 자비와 사랑의 풍속이 이루어져 함께 삼신(三神)의 명령에 귀의하는 교화의 세상이 되었다 한다.
또, 고구려 동천제(東川帝, 서기227년~서기248년) 시절에 매년 한맹(寒盟) 때에는 평양의 수혈(隧穴)이나 기림굴(箕林窟)에서 삼신(三神)을 제사하여 맞이하였는데, 삼륜구덕(三倫九德)의 노래(歌)가 있어 권장되었다고 기록되고 있는데 이때의 구덕은 곧 구서(九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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