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에 가면 시어머니 말이 옳고, 부엌에 가면 며느리 말이 옳다.” 시비를 분명히 가리자면 언뜻 모순되는 말이다. 그러나 이 속담에는 갈등을 피해가는 조상들의 지혜가 녹아있다.
심각한 체력저하로 학업까지 중단했다는 대학생. 하루 10시간을 넘게 자도 계속 피곤해 휴학까지 했다. 그런데 환자의 호소에는 마치 남 이야기하듯 절박함이 묻어나지 않았다. 대신 엄마는 “오후 5시에 잠들어 다음날 오전 10시까지도 못 일어난다”고 답답해했다.
환자의 체질은 태음인. 의사표현을 우회적으로 할 때가 많다. 그렇게 해서도 관철되지 않으면 결국 몸으로 반응이 나타난다. 환자는 “왜 이런지 모르겠다”고 말하지만, 신체반응은 더 강력한 무의식적 의사표현이다.
상담결과 원인은 아버지와의 갈등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강박적 성향이 강한 소음인이었다. 전공이 마음에 들지 않아 다시 대학을 가겠다고 할 무렵 아버지와의 갈등이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소통방식은 한마디로 군대식이었다. 자신은 상관이고 아내나 아들은 부하이다. 책임의식은 누구보다 강하지만 소통방식은 상명하복이다.
환자의 기면증은 아버지에 대한 수동적 공격이다. ‘빨리빨리’라며 곁에서 끊임없이 개입하지만, 상대의 말은 좀처럼 듣지 않는 아버지에게 맞서기 위한 선택이다. 나 자신을 파괴해서라도 아버지가 원하는 대로 따라주지 않겠다는 억압된 분노를 표출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 탓과 아버지를 바꾸려 드는 것으론 해결되지 않는다. 아버지도 아들도 상처뿐이다.
상대를 긍정하고 출발해야 한다. 좋고 싫음의 차이를 옳고 그름으로 몰고 가면 반목과 갈등은 끝이 없다. 설령 자신의 잘못을 알아도 상대의 지적엔 발끈할 뿐이다. 강자는 어떻게든 힘으로 눌러 이기려 하고, 약자는 우회적으로 저항하고 공격한다.
옳고 그름이 아닌, 좋고 싫음의 문제로 전환해야 한다. “아버지가 틀렸어요”라는 아들의 말을 소음인 아버지는 명백한 하극상이자 도발로 간주한다. ‘가족이라도 서로 의견이 다르구나’ 정도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틀렸다는 지적에 마치 큰 치부를 들킨 것처럼 반감부터 생긴다.
소음인을 상대할 때는 자존심을 지켜주는 것이 기본이다. 어른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옳고 그름을 시비하기보다 일단 인정해주고 내가 좋고 싫음으로 피하는 게 현명하다. “아버지 말이 틀려서 하기 싫어요”가 아니라 “아버지 말씀이 옳지만…”이라고 전제를 깔아야 한다. 이후에 ‘다만 지금 여건상 이건 감당하기 힘들다’든지 ‘이번에는 이걸 꼭 한번 해보고 싶다’는 식으로 피해가야 한다.
소음인은 자신이 옳다고 인정만 해주면 자존심을 다치진 않는다. 일단 ‘아들 또한 내 편이구나’라는 생각에 관용적 태도가 생겨난다.
얼마 뒤 환자는 “아버지가 내 뜻에 동의했다”면서 좋아했고, 보약 덕분이라며 기면증도 빠르게 회복했다. 이후 아버지에 대한 시선도 긍정적으로 전환시켰다. 아버지의 강박적 태도는 자수성가라는 험한 환경에서 나름의 힘겨운 생존노력이 굳은살처럼 인격으로 자리 잡은 결과다. 이제와 자식이 이를 지적한다고 나이든 부모가 달라지긴 정말 어렵다. 또 현재 내가 누리는 많은 삶의 혜택은 과거 아버지의 강박적 노력의 결실임을 감사할 수 있어야 한다.
앞으로는 아버지의 개입을 잔소리로만 여기지 말고, ‘부모가 겪었던 어려움을 자식이 똑같이 겪을까봐 불안한 노파심’으로 좀 더 따뜻한 시선으로 해석하길 당부했다.
이처럼 각자 입장에서 보면 각자의 말이 모두 옳다. 주어진 삶의 여건과 적응방식이 다른 것뿐이다. 그래서 아버지도 아들도, 시어머니도 며느리도 모두 옳다. 또한 골방에 가면 시누이 말도 틀리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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