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출 수 없는 총알이 관통할 수 없는 벽에 가서 닿은 순간이다. 막연한 불안의 두려움을 칼 융은 이같이 표현했다. 그런데 바로 이 지점에서 인간은 성장한다. 그래서 불안은 두려움인 동시에 현재의 자신보다 훨씬 더 큰 곳으로부터 초대받은 긍정적 순간이라고도 말한다.
불안장애로 내원한 30대 직장인. 그는 “사무실에 있으면 마치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리고 불안감에 휩싸인다”면서 “도대체 왜 그런지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한다. 수개월째 같은 증상이 계속되면서 소화불량과 불면증, 성욕감퇴까지 함께 호소했다. 대부분의 병적 불안은 환자처럼 스스로 원인을 찾지 못한다. 개인적 원인이 분명 존재하지만 무의식적으로 회피하기 때문이다.
분석결과, 직장을 옮기는 문제가 원인이었다. 현 직장이 늘 비전이 없다고 여기던 차에 친구로부터 동업제안을 받은 시점이다. 친구 말대로라면 대박 사업인 것 같아 당장 옮기고 싶다가도, 어려운 경기에 그나마 안정된 지금 직장을 박차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옮길까 말까 수개월간 고민만 하는 사이 증상은 악화됐다.
소음인의 불안정지심(不安定之心)이다. 소음인은 매사에 명쾌한 결론을 내려야 하는 기질이다. 어정쩡한 상황이나 양단간의 갈림길에선 생각이 많아지고 다른 체질보다 더 불안해진다.
여기에 실패가 두려워 막연히 결론만 머릿속에서 왔다 갔다 하면 불안은 더 증폭된다.
수학문제를 놓고 불쑥 답만 찾으려 할 뿐, 정답이 나오기까지 풀이과정을 내 마음에서 더 구체적으로 따져보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어느 하나를 답이라 생각하면 ‘과연 이게 정답일까’라며 다시 의심한다.
환자는 ‘옮길까? 말까?’라는 최종 결정만 두고 왔다 갔다 고민했다. 옮길 경우 사업타당성이나 투자금액 등 사전조사와 구체적 고민은 부족했다.
반대로 전직에 따른 실패가능성도 구체적으로 들여다보지 않았다. 막연히 ‘실패하면 어쩌지…’라는 걱정뿐이다.
어느 정도를 투자해 실패하면 구체적으로 어떤 대가를 치르고, 성공을 위해 그 대가는 기꺼이 치를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따져보지 않았다. 결국 ‘옮기자’ 마음먹으면 무의식에선 실패 가능성이 떠오르고, 반대로 생각하면 현 직장의 불만족스러운 점이 떠오른다.
환자에게 단순히 불안하지 않으려 애쓰는 것으론 해결되지 않음을 설명했다. 한 발 더 깊이 파고들어야 한다.
‘최상의 결과를 위해 최악의 결과도 감당할 수 있는가’를 스스로에게 묻도록 했다. 그래서 Yes라면 과감히 진행하는 것이고, No라면 깨끗이 멈추면 된다. 더 이상은 이리저리 재는 마음을 버려야 한다.
대가는 안 치르고 최상의 결과만 얻고 싶은 건 탐욕이다. 그 결과가 바로 불안이다. 내면의 호소에 더 구체적으로 귀 기울이고 직시하면 불안은 줄어들지만, 대충 덮으려 하면 더 심해진다. 수학문제의 답을 대충 적어놓고 맞을까 틀릴까 걱정하는 격이다.
불안의 경과기간이 길어지면 결국 심신의 에너지를 고갈시켜 몸의 불편까지 초래한다. 다행히 환자는 몇 차례 상담 뒤 결단을 내렸고, 소음인의 신체적 약점을 보완하는 한약치료를 병행해 몸도 마음도 안정을 되찾았다.
키에르케고르는 “불안은 자유가 경험하는 현기증”이라고 말했다. 더 높은 하늘을 비상하려는 자유에는 떨어질까 불안한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다.
그러나 자유는 좋고 대가는 나쁘다는 이분법적 생각에 대가를 외면만 할수록 불안은 실재보다 더 증폭된다.
자유를 향한 선택의 대가를 직면해보는 용기야말로 불안에 대한 묘약이다. 그래야 불안은 고통인 동시에 자신의 삶에서 한 단계 더 성장할 절호의 기회가 왔음을 알리는 청신호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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