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고 크고 올바른 기운인 호연지기(浩然之氣). 사상의학에선 호연지기가 강해야 건강해진다고 말한다. 그러나 호연지기 이전에 본능적 욕구인 호연지리(浩然之理)를 바르게 분별하는 것이 우선이다.
역류성 식도염으로 내원한 40대 남성. 속이 쓰리고 가슴이 답답하면서 식욕과 소화력이 예전 같지 않다. 몇 개월째 약을 먹는데도 별 차도가 없다. 환자의 아내는 “몸이 쇠약해지면서 남편이 심하게 화내는 일도 잦아졌다”고 걱정했다. 사소한 의견 차이에도 갑자기 소리부터 버럭 지른다. 환자는 “나도 모르게 순간 감정제어가 안 된다”고 말했다.
일종의 분노조절장애다. 억눌린 감정들이 그 한계를 넘어서면 부적절한 때와 장소, 대상을 향하여 폭발한다. 종로에서 뺨맞고 한강에서 화풀이하는 격이다. 그 원인을 ‘한강’이 아닌 ‘종로’에서 찾아야 한다.
환자는 목사다. 아프기 시작한 건 수개월 전 해외연수 심사결과 발표 뒤부터다. 동료들도 모두 이번에는 경력 순서에 따라 환자의 차례라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정작 심사위원회의 결정은 달랐다. 그는 “학연 때문에 후배 목사에게 터무니없이 높은 점수가 갔다”면서 “너무 황당하고 억울해서 목구멍까지 뭔가 치밀어 올랐다”고 말했다.
그 뒤로 문제제기를 할까 수없이 망설이다가 결국 참고 말았다. 성직자가 금전문제까지 연관된 일로 옥신각신하는 것 자체가 금기다. 교단을 탈퇴할 각오를 하지 않으면 문제제기조차 어려운 분위기라고 전했다. 하지만 환자는 “정치인도 아니고 종교인들이 어떻게 이런 일을 조작하는가”라며 여전히 억울해했다. 이런 불쾌한 감정들이 바로 호연지리다.
인간도 동물의 몸을 지녔기에 생길 수밖에 없는 본능적 욕구다. 식욕, 성욕처럼 남녀노소 빈부귀천과 상관없다. 만약, 억울하게 왼뺨을 맞았다면 맞받아 때려주고 싶은 욕구가 본능적이다. 성직자도 예외일 수 없다.
그런데도 환자는 “명색이 목사인 내가 그들을 용서하지 못하는 데서 심한 자괴감을 느꼈다”면서 “내가 이것밖에 안 되나라며 참회 기도를 수없이 했고 이젠 다 용서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환자의 몸은 ‘아직 도저히 용서가 안 된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다. ‘억압’과 ‘용서’가 ‘호연지리’와 ‘호연지기’가 구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마는 “호연지리부터 분별해야 호연지기가 생겨난다”고 말했다. 그런데 왼뺨을 맞고도 오른뺨을 내밀고 상대를 용서까지 한다는 건 지나친 이상과 양심일 뿐이다. ‘나는 성직자인데…’라며 ‘나에게는 저런 저속한 욕구는 없다’ 또는 ‘없어야 한다’며 억압해온 것이다.
자신의 호연지리부터 더욱 생생하게 구분해야 한다. 즉, 지나친 양심과 이상의 무게를 줄여야 한다. 성직자도 인간이다. 심사위원이나 후배를 속으로 얼마든지 미워해도 된다.
얼굴에 침을 뱉는 상상인들 못하랴. 다만, 즉흥적 욕구대로 했을 때 치러야 할 대가와 후폭풍을 미리 떠올려보고, 적절한 행동방식을 찾는 것뿐이다.
섣부른 용서와 기도는 오히려 화를 자초한다. 대신, 충분히 미워한 뒤에 ‘상대가 왜 그랬을까’ 이해하면 된다. 대부분 상대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했고, 내 이익과는 상충된 경우다. 이를 아는 것이 최대한의 용서다. 서둘러 봉합하면 결코 호연지기가 생겨나지 않는다. 환자는 “기도에 대한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면서 “다른 목사들에게도 기회가 될 때마다 강조한다”고 말했다.
인간의 용서는 상처 준 상대의 입장을 한번쯤 헤아려보는 것이 전부다. 남은 건 상처 준 이보다 내가 조금이라도 더 행복하게 사는 것뿐이다. 그것만이 상대에 대한 복수인 동시에 최고의 용서다. 나머지는 신의 몫으로 남겨두어도 족하다.
'醫學 > 한방춘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무치는 억울함, 큰 병 된다 (0) | 2013.09.27 |
---|---|
‘나 때문이야’와 갈등 치유 (0) | 2013.09.26 |
두통·수면장애, 마음을 살펴라 (0) | 2013.09.24 |
기면증도 고치는 긍정의 힘 (0) | 2013.09.23 |
배려도 체질따라 하라 (0) | 2013.09.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