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醫學/한방춘추

해직위기 노조간부의 흉중비색증


세상 바라보는 눈을 고치자 ‘호전’

“인간은 아름답지 않다. 다만 아름다움을 흉내 낼 지능이 있을 뿐이다.” 인간이 아름답다고 믿고 싶은 건 콤플렉스가 일으킨 착각이다. 특히 남들은 몰라도 나 자신만은 숭고하고 아름답다는 믿음은 더 지독한 착각이다.

가슴이 너무 답답하고 목이 조이는 느낌 때문에 괴롭다는 30대 남성. 자다가도 가슴이 답답해 주먹으로 두드리다 간신히 잠들곤 한다. 때로는 온몸에 전기가 통하듯 찌릿한 느낌과 심장이 조이는 듯해 병원에서 검사도 받았지만 원인을 못 찾았다.

한의학에선 흉중비색증이라고 한다. 화병을 오래 끌면 가슴 한가운데 전중혈에 기가 맺혀 나타나는 병이다. 이때 선현들은 전중혈을 눌러 그 통증 정도로 병세의 경중을 가늠했다. 환자 역시 유독 자지러지게 아파한다.

그는 직장에서 노조활동을 하다 해고 위기에 놓였다. 수개월간 파업한 뒤 노사합의로 업무에 복귀했다. 그런데 사측은 애초 약속과 달리 노조간부들을 모두 해고 또는 정직시켰다. 환자 역시 정직 상태로 ‘지금 퇴사하면 퇴직금은 주겠다’는 사측의 회유를 받고 있다.

환자는 “사측의 태도는 어느 정도 예상했다”며 “정작 힘든 건 끝까지 함께할 것처럼 나를 전면에 나서도록 부추겼던 동료들의 배신”이라고 말했다. 이제 와선 다들 모른 척한다는 것이다. 그는 “사람에 대해 환멸을 느낀다”며 “정직 중이라 노조활동비에서 급여를 받고 있지만, 이마저도 동냥받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그에게 “옳은 일을 했는데 참 안됐다, 힘내라”는 식의 위로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옳고 그름의 문제에서 좋고 싫음의 문제로 시각을 전환해야 한다. 자신은 옳은데, 주변과 세상이 틀렸다는 관점만 고수하면 계속 가슴칠 일만 생긴다.

사람이 만나고 헤어지는 것은 모두 ‘이익(利)’ 때문이다. 사상의학에선 주역 팔괘 중 감(坎)괘와 손(巽)괘에 비유한다. 감은 물, 손은 바람을 상징한다. 사람들은 서로 이익이 있을 때, 마치 물처럼 하나가 되어 힘차게 사물을 실어 앞으로 나아간다. 반면, 서로의 이익이 다하면 처음의 힘찬 기세는 사라지고, 제각각 바람처럼 흩어진다.

사랑도 우정도 마찬가지다. 피를 나눈 형제자매들은 다를까? ‘순수한’이란 단어로 수식하고 싶지만, 상호 이익 없이 만남이 유지되긴 어렵다.

그래서 탈무드는 ‘죽은 사람의 무덤을 찾는 것은 가장 고상한 행동’이라고 말한다. 훗날 감사나 보상 등 이익을 바랄 수 없기 때문이다.

노조와 파업 참여 역시 각자의 이익을 위해 뭉친 것뿐이다. 옳은 것이 아니라 서로 좋은 것이다. 다만, 여기서 중요한 착각을 한다. ‘이익’을 물질이나 경제적 보상 따위로만 국한하는 것이다. 대신 명예나 양심, 대의명분 등 정신적 만족의 추구는 이와 차원이 다른 고매한 것으로 간주하려고 한다.

그래서 환자는 희생했고 동료는 배신했다 여긴다. 환자는 정말 아무 이익 없이 홀로 희생만 한 것일까. 경제적 이익보다 자신의 명예와 양심이란 이익을 택한 것뿐이다. 어찌보면 물질보다 더 큰 만족을 추구한 것이다.

이렇게 보면 동료도 환자도 제각각 다른 이익을 위해 함께 뭉쳤고, 그 이익이 다하자 바람처럼 흩어지려는 것뿐이다. 애초에 배신은 없다. 동료들은 양심의 가책 대신 물질을 택했고, 환자는 그 반대다. 노조도 사측도, 동료들도 나도 언제나 각자의 이익을 위해 서 있을 뿐이다.

환자 역시 자신이 좋아서 선택하고 행동한 것임을 받아들이면서 가슴치는 일도 불면의 날도 줄어들었다.

이제마는 “인간의 가슴속엔 항상 자신과 세상을 속이려는 심욕이 있으니, 이를 스스로 꾸짖어야 요순처럼 비로소 아름다워진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