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醫學/한방춘추

어린이의 병과 부모


“유년기에는 정서적으로 미약한 것이 병이 되니 마땅히 어진 어머니가 보호해야 한다. 소년기에는 용맹함이 부족하여 병이 되니, 현명한 아버지의 도움이 절실하다.” 이제마는 아이들 병은 아이 자체의 문제가 아닌, 심리적·환경적 요인부터 돌아보라고 강조했다.

소변을 옷에 지리는 유뇨증(遺尿症)으로 내원한 초등 2학년생. 소변을 잘 가렸는데 6개월 전부터 학교에서 하루 종일 참다가 결국 하굣길에 흥건하게 적신다. 오랫동안 약물치료도 받았지만 증세는 점점 심해졌다. 결국 기저귀를 차게 됐고, 친구들에게 들킬까봐 학교 가기도 싫어졌다.

소변을 못 가린다기보다 억지로 참는다. 아이는 “학교 화장실이 더러워서”라며 “소변을 보면 더러운 게 내 몸으로 막 옮겨올 것 같다”고 말한다. 엄마는 “제발 참지 말라고 해도 소용이 없다”면서 “이러다 학교도 못 다닐 것 같다”며 울먹였다.

방광은 심리적 영향을 많이 받는다. 한의학적으론 특히 공포나 놀람과 연관된다. 이런 정서가 강할 때 시쳇말로 ‘오줌 쌀 뻔했다’고도 표현한다. 또 절간 화장실을 근심 푸는 장소라는 뜻으로 ‘해우소(解憂所)’라고도 한다.

이처럼 배뇨행위는 단순한 소변 배출 외에 여러 심리적 의미를 내포한다. 그런데 소변을 계속 참는다는 것은 경계심을 늦추지 못한다는 의미다. 무엇에 대한 경계심일까.

엄마는 “학기 초 엄한 선생님한테 적응을 잘 못한 것 같다”고 말한다. 그러나 선생님이 ‘조용히 하라’며 그저 회초리로 교탁을 탁탁 두드리는 소리에도 아이는 놀란다. 다른 아이들은 아무렇지 않다면 아이만의 다른 원인을 찾아야 한다.

할아버지의 엄한 훈육 때문이었다. 맞벌이 가정이라 어려서부터 낮에는 인근 할아버지 댁에서 지냈다. 초등학교 입학 전에 천자문을 떼는가 하면, 수학이며 영어며 할아버지가 가르치는 대로 곧잘 따라왔다.

할아버지는 손자가 영특해 더욱 엄격하게 훈육했다. 판검사로 진로도 이미 정해줬다. 그리고 ‘공부는 하기 싫어도 참으면서 해야 한다’는 신념을 강조했다.

소변을 최대한 참아보는 습관은 아이가 선택한 나름의 생존방식이다.

할아버지의 손자 양육에 대한 책임감은 오로지 조기 학습에만 모아졌다.

반면 할아버지가 내준 숙제를 제대로 못하면 혼났던 아이의 마음엔 공포감과 학습에 대한 분노가 함께 새겨졌다. 저녁 늦게 귀가하는 부모 역시 할아버지의 이런 태도를 방임했다. ‘숙제는 제대로 했나’만 물을 뿐, 아이가 무엇에 힘들어하는지 정서적 교감은 부족했다. 아이가 편안함을 느끼고 기댈 곳이 없었던 것이다.

아이는 이미 2년 전 틱장애가 왔었다. 그때 보호자들이 멈췄어야 했다. 그런데도 여전히 아이의 신체적 문제로만 보고 안정제만 먹인 게 더 큰 화를 부른 것이다.

아이에게 학교 선생님은 엄한 할아버지와 무의식적으론 동일한 존재다. 아울러 학교라는 대상은 그토록 피하고 싶었던 할아버지와의 학습을 연장하는 곳이다. ‘더럽다’라고까지 느끼는 것은 두려운 동시에 분노의 표현이다. 아이의 방광괄약근을 온전히 이완시키려면 마음의 경계를 함께 늦춰야 한다. 열쇠는 이미 부모가 쥐고 있었지만, 아이의 몸만 보니 못 본 것이다. 할아버지와의 학습을 피하고, 일단 친구들이 없는 다른 층에서 소변을 보기로 하면서 조금씩 나아졌다.

아이들이 겪는 문제들은 결코 부모와 무관하지 않다.

익지 않은 밤송이에 빨리 벌어지라며 칼집을 미리 내거나, 홍시가 빨리 되길 기대하며 감나무를 부러져라 흔들어댄다. 여러 가지 문제가 혼재된 듯 보이지만, 덧칠을 벗겨내면 언제나 남는 건 부모와의 관계다.

그래서 아이들이 힘들어한다면 부모가 달라지는 것이 언제나 가장 빠른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