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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과 은행


27. 벌이 쏘지 않아도 벌어지는 - 밤

감과 비교해서 태양과에 속하는 밤은 매우 딱딱합니다. 밤나무는 배수가 잘되는 양지바른 곳에서는 잘 자라지 못하고, 밤나무가 군락을 이루는 곳은 습하고 약간 그늘진 계곡입니다. 내부 양기가 충만한 밤나무는 많은 양기를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밤꽃이 필 때는 가지가 위로 향하고 있습니다. 만약 밤꽃이 쳐지기 시작한다면 이는 화수분 교배가 이미 끝난 시기라고 보면 됩니다. 그리고 밤나무의 열매인 밤송이가 터지는 것은 양기가 솟구치는 현상이지, 속설처럼 벌이 쏘아서 터지는 것이 아닙니다. 김삿갓이 남긴 일화에서도 이것을 확인할 수 있지요. 김삿갓 이야기를 잠깐 들어봅시다.

김삿갓이 어느 날인가 두메산골(아마도 쉬리가 유명한 동강 유역일지도 모릅니다.)을 떠돌다가 20세의 꽃님이를 만나게 됩니다. 20세의 나이라면 그 당시에는 과년한 것을 지나 노처녀에 해당되겠지요. 그때까지 시집을 보내지 못해서 마음이 아팠던 꽃님이 어머니는 대선비인 김삿갓을 만나자 딸에게 하룻밤의 추억이라도 만들어 주고자 합니다. 그래서 두 사람이 만날 자연스러운 기회를 만들어 주게 되는데……. 이렇게 해서, 꽃님이와 하룻밤을 보낸 김삿갓이 한수 읊기를 “모심내활(毛深內闊)하니 필거타인(必去他人)이라”고 했답니다. 털이 깊고 속이 넓으니 아무래도 남이 지나간 자취다, 뭐 이런 뜻 입니다. 이때 한문 꽤나 읽었던 모양인지 꽃님이도 삿갓이 읊은 글의 뜻을 눈치채고 대꾸하기를,
“뒷동산 밤송이는 벌이 쏘지 않아도 벌어지고,
냇가의 수양버들은 비가 오지 않아도 늘어진다.”고 비유하여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이처럼 밤송이는 벌이 쏜다고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 충만한 양기가 솟구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양기가 충일한 밤은 대장기능이 약한 음인에게 약이 됩니다.

그리고 밤의 속껍질은 떫은 맛을 지니고 있는데 이것은 태양과의 튀는 기운에 의해 밤알이 쪼개지는 것을 보호하기 위해, 반대 기운인 태음 기운으로 피막을 형성한 것으로 이해하면 됩니다. 그리고 옛말에 밤꽃 필 때 십 년 수절이 깨진다고도 하는데, 이는 밤꽃의 향기가 마치 남자의 정액 냄새와 비슷하기 때문에 그런 말이 나온 것일 겁니다.

28. 은행

은행은 태양과에 속합니다. 은행은 다른 씨앗이 그렇듯이 약간의 독성이 있는데, 태양인이 먹게 되면 폐를 더욱 실하게 하여 상대적으로 간이 더욱 약해집니다. 또한 소양인이 복용하더라도 번열과 구토 증상이 생기게 됩니다. 그 동안 사람들은 체질을 잘 모르기에, 이런 부작용을 예방하기 위해 은행은 많이 먹으면 안된다고 했던 것입니다.

반면에 태음인은 아무리 많이 먹더라도 부작용이 없으며, 목구멍이 답답할 때 복용하면 상쾌한 기분까지 맛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소음인에게도 은행은 역시 좋은 음식이 되지요. 여기서 요리비법 한가지 소개합니다. 은행은 소의 양이나 천엽과 함께 국으로 끓이면 고기 맛도 좋고 은행 맛도 함께 즐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