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도 정치로 인한 스트레스
순조를 가장 괴롭혔던 건 왕 노릇으로 인한 스트레스다. 정순왕후의 섭정으로 주눅이 든 데다, 여우를 피하다 만난 호랑이처럼 처가 쪽 김조순의 세도 정치로 기를 펴지 못했기 때문이다.
전조 증상은 신경성 질환으로 불리는 편두통처럼 다가온다. 순조는 재위 10년을 맞으면서 귀 주변이 땅기고 아프다는 고통을 호소해 육화탕을 처방받는다. 귀 주변이 아프고 당기는 건 편두통 증상에서 흔한 전형적인 증상이다.
그런데 의관들이 신경성 증상을 중이염으로 착각한다. 그래서 염증성 증상에 투여하는 형개연교탕과 만형자산을 처방했다. 신경성 증상을 염증성으로 착각한 것도 무리일뿐더러 본래 속이 약한 사람에게 생지황이나 찬 성질의 약을 처방하니 소화 기능에 문제가 생기는 건 당연하다. 그래서 의관들은 설사와 식욕 부진에 쓰는 건비탕을 급히 다시 지어 올린다.
순조가 본격적으로 신경성 증상을 호소한 때는 다음 해인 재위 11년이다. 순조는 전좌(殿座)하는 일이 자주 있다고 걱정한다. 실록은 전좌 증상을 앉아서 가만히 있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는 불안 증세로 파악했다.
"근래에 전당에 임어하심이 거의 빠지는 날이 없으시니, 성궁의 노고는 이미 말할 수 없지만, 전좌하셨을 적에는 그 일을 끝낸 적이 없으며, 출궁이나 환궁하는 경우에는 매번 허둥대며 급히 서두르는 탄식이 있습니다. 전하께서 비록 화기(火氣)가 쌓인 증세로 인연하여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답답함을 소통시키는 자료로 삼기는 하지만…."
순조는 자신의 마음 상태를 솔직히 털어놓는다.
"내 마음을 내가 도리어 알지 못하는 때가 있다." "평상시에도 시끄럽게 떠드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걸어 다니는 소리 같은 것도 역시 모두 듣기가 싫다."
병적으로 나타나는 증상도 그대로 이야기한다. 조동(躁動)증이 생겼다고 말한 것이다. 조동은 말 그대로 심장이 급박하게 뛰면서 마음이 급해진다는 뜻이다.
이런 불안 증세에도 영부사(조선 시대 중추부의 으뜸 벼슬) 이시수는 유학적 치료법인, 마음을 기르는 양심(養心)을 제시했다.
"간혹 번조하고 답답하더라도 참을 인(忍)자 공부에 착수하여 오늘과 내일에 참고 또 참는다면 저절로 평상시처럼 회복될 것입니다."
순조는 마음뿐만 아니라 신체적으로도 기력이 쇠진했다.
"어머니께 문안할 때면 번번이 걸어서 나아갔지만 땀이 나는 경우가 없었는데 지금의 경우는 걸어서 절반도 못 가고 이미 몸에 땀이 나고 숨이 차며 수라는 입맛이 달지 않아 잘 먹지 못하며 정신이 황홀하다." "잠이 드는 것을 하룻밤으로 견준다면 거의 3, 4경쯤이며 수라는 평상시의 10분의 1 정도다."
내 마음 나도 몰라?
순조는 재위 11년, 22세가 되던 시점부터 불면증과 식욕 부진, 사지 무력, 피로, 정신 황홀, 현기증이라는 다양한 신경 쇠약증과 소화 불량증을 호소한다. 처방한 약물들을 살펴보면, 순조의 여성적 성품이 분명히 드러난다. 귀비탕, 감맥대조탕, 가미소요산을 각각 처방받았는데, 이 처방들은 여성의 우울증이나 히스테리에 사용하는 대표적인 치료 약물이다.
귀비탕은 송나라의 엄용화가 개발한 건망증 치료 약물로 '일에 대한 근심이 지나쳐 심장과 비장이 과로하고 건망증이나 가슴이 두근거리는 증상이 병이 된 것'을 치료하는 처방이다. 증상의 허실과 음양 중 몸이 활발하고 남성적인 양증에는 사용하지 말 것을 경고한 음증의 여성적인 처방이다.
감맥대조탕도 마찬가지다. 감초와 밀, 대추 3가지로 구성된 처방으로, 역시 장중경이 지은 <금궤요략> 22편에 기재돼 있다. 치료 목표는 "부인이 히스테리로 울거나 웃거나 하고 귀신에게 홀린 것처럼 되어 빈번히 하품을 하는 경우에 사용한다"라고 돼 있다. 즉, 정신 안정 작용을 하는 처방이다.
가미소요산은 정조가 화증(火症)에 자주 사용했던 처방이다. 어깨가 자주 결리고 쉽게 피로하며 정신 불안 등의 신경 증상이 있는 허약 체질에 사용하는 처방이다.
▲ 드라마 <이산>의 순조
여성적 기질
순조에 대한 질병 치료는 약물 위주였다. 처방의 종류도 아주 다양해서 100여 가지나 됐다. 순조에게 허약하고 피로한 허로(虛勞) 증상이 지속되자 의관들은 극단의 처방을 구사한다.
대조지황탕과 혼원단이라는 처방이 그것이다. 대조지황탕은 대조환이나 보천대조환에서 만들어진 처방으로 맥이 약하고 기혈이 쇠약한 것을 치료하는데, 허로한 사람이 성 생활을 지나치게 하여 가슴과 손바닥에 번열이 나는 데 먹으면 효험이 좋은 약이다. 혼원단은 몸이 몹시 여위고 기침과 가래가 있으면서 귀주(鬼?)병을 앓는 사람을 치료하는 처방이다.
이 두 처방에 공통적으로 들어가는 건 태반이다. 태반은 임신부의 자궁 안에서 태아와 모체 사이의 영양 공급, 호흡, 배설을 주도하는 조직이다. 고대에는 태반을 인간이 최초로 몸에 걸치는 가장 좋은 옷이라고 여겨 신선의(神仙衣)라고도 했다. 한약재로서의 정식 명칭은 자하거(紫河車)다.
자하거의 자색은 보라색이다. 보라색은 검은색과 붉은색의 혼합이다. 검은 어둠에서 해가 뜨는 붉은 여명의 아침이며, 생명의 시작을 알리는 색깔이다. 본래 자궁은 생명이 시작됐지만, 세상에 나오지 않은 미명의 장소이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 붙었다.
자하거의 약용은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도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지만, 한의학에선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본초강목(本草綱目)>의 기록은 현실과 신체발부(身體髮膚)에 대한 유학이념 사이의 치열한 괴리를 보여준다. "유구국(오키나와)에서는 부인이 출산하면 반드시 태반을 먹는다" "팔계(광서성의 만(蠻)족)의 요인은 남자를 생산하면 친족이 모여서 태반을 먹는다"라고 적으면서도 "사람으로서 사람을 먹는다면 유구족이나 요인들 같은 오랑캐와 얼마나 차이가 있겠는가"라고 탄식의 말을 남겼다.
명대에 <본초강목>의 저자 이시진이 자하거의 사용을 망설였다면 명의 뒤를 이은 청나라는 자하거를 천하의 명약으로 사용했다. 청대의 비방집에 보천하거대조환이라는 처방으로 실질을 살렸다.
자하거의 약효는 대부분 자음(滋陰), 즉, 음을 기르는 효능을 첫 번째로 꼽는다. 태반은 생명력을 기르는 텃밭으로 온갖 중요한 물질의 창고가 된다. 인체에서 물과 같은 혈액 모양의 물질이 부족해 잘 달아오르는 것을 음의 부족으로 파악해 음허(陰虛)로 인식하고 그 물질을 보충하는 데 자하거 약효의 특징이 있다고 본 것이다.
<동의보감>에서 기록한 자하거의 치료 효능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주목하는 치료 효과는 남성 성기능 장애와 여성 불임에 대한 효능이다. 입문대조환 처방의 주치(主治)는 더욱 구체적이다. "기혈이 허약하고 음경이 줄어들어 겨우 형태만 있으며 안색이 누렇게 뜨고 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한다"라고 성기능 개선을 효능으로 내세웠다.
자하거는 폐결핵과 같은 만성 소모성 질환에도 치료 효능을 발휘한다. 만성기관지 천식과 피로, 해소 등 호흡기도가 약해서 점액이라는 음적인 물질의 분비량이 줄어들면 쉽게 이물질이나 바이러스, 세균에 노출되는 상태를 치료한다.
자하거의 또 다른 치료 효능은 항스트레스 작용이다. <동의보감> 내경편 신문(神門)에는 태반이 간질이나 가슴이 뛰는 것, 정신이 없는 것, 말이 많으나 일관성이 없는 것에 혈을 길러 정신을 안정시키는 효능이 탁월한 것으로 기재했다.
순조는 재위 13년에 웅주산과 인삼석창포차를 복용한다. 웅주산은 가위 눌린 것을 치료하는 처방이다. 한의학에선 가위 눌림을 귀염이라고 한다. 이름처럼 귀신이 압박한다고 본 것이다. <동의보감>은 이 증상을 이렇게 설명한다.
"잠들었을 때는 혼백이 밖으로 나가는데 그 틈을 타서 귀사가 침입하여 정신을 굴복시키는 것이다."
꿈을 꾸고 불안해지는 가장 큰 원인은 혈기가 부족해서라고 보았다. 혈기는 피로와 스트레스로 인해 손상 받는다. 가위 눌림은 현대 의학에서 수면 마비라고 하는데, 일종의 수면 장애로 본다. 잠자고 있는 동안 긴장이 풀린 근육이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의식만 깨어나 몸을 못 움직이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웅주산의 구성 약물은 우황, 웅황, 주사 등 신경을 안정시키는 약물이다. 순조가 받은 심리적 압박의 정도를 가늠할 수 있는 약재들이다. 이 시기에 처방된 약물들엔 대부분 마음을 안정시킨다는 심(心), 지(志), 신(神) 등의 글자가 들어가 있다. 가미영신환, 천왕보심단, 청심온담탕, 주사안신환 등의 처방을 달여 올렸다.
소화 불량에 신경 쇠약 겹쳐
22세부터 25세까지 순조는 소화 능력이 떨어지면서 신경 쇠약 증세를 호소한다. 불면증, 식욕 부진, 피로, 정신 황홀, 피로, 숨참, 사지 무력증으로 고생한다.
한의학은 이런 신경성 위장 질환을 외향성과 내향성으로 나누어 치료한다. 외향성인 사람은 간기울결(肝氣鬱結)로 보고, 내향성인 사람은 심담허겁(心膽虛怯)으로 본다. 내향성인 사람의 증상은 식욕이 없으며 신경이 쓰이는 일, 긴장되는 일이 생기면 밥맛도 없고 소화가 안 되며 정서가 불안하고 깜짝깜짝 잘 놀란다. 꿈을 많이 꾸고 무서움을 잘 타면서 쉽게 어지럽고 자주 구역감이 발생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순조는 내향성의 스타일이었다.
순조가 지속적으로 허약해지면서 위장의 소화력이 떨어지자 가미군자탕 계열의 처방이 이뤄진다. 가미군자탕은 순조 자신이 운명하는 마지막 날까지 복용했던 처방이다. 가미군자탕, 육군자탕, 생위군자탕, 삼령백출산, 승양순기탕 등은 모두 사군자탕이라는 처방을 모토로 그때그때 증상에 맞게 변형한 처방이었다. 순조 14년, 왕의 신뢰를 받던 유의(儒醫) 홍욱호는 왕의 온몸이 불편한 증세는 오로지 위기(한의학에서 원기를 이르는 말)가 부족해서 나타나는 것이라 진단하면서 위기를 보충하고 건강하게 만들 것을 재삼 강조한다.
사군자탕은 인삼, 백출, 백복령, 감초 4가지로 구성된 약물로 전신이 무력하면서 소화 기능이 약하고 자주 설사를 하면서 많이 먹지 못하고 힘이 없는 증상에 사용하는 처방이다. 사군자탕을 푹 달여 대접에 담아놓으면 담백한 마음을 지닌 군자 같다. 달인 듯 달이지 않은 듯 담담한 빛깔이어서 차 한 잔 마시는 것 같다. 처음엔 그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 알기 힘들지만 한참을 먹고 나면 건강이 개선된 느낌이 오는 것이다. 이런 처방을 꾸준히 한 탓인지 순조는 38세까지 13년 동안은 질병 기록이 없다.
죽는 날까지 가미군자탕 복용
순조를 죽음으로 몰고 간 직접적인 사인은 다리 부위의 종기다. 다리 부위에 생긴 염창(?瘡)으로 짐작된다. <동의보감>은 염창을 이렇게 설명한다.
"양쪽 다리가 짓물러서 나쁜 냄새가 나고 걸어 다니기도 힘든데 이것은 정강이뼈 위에 생긴 것으로 위험한 질병으로 보면서 많이 걷지 말아야 한다."
순조 14년 11월 2일, 다리에 문제가 생긴 것을 먼저 지적하기보다는 다리에 약을 붙인 결과로 수포와 붉은 열이 올라오는 것을 호소한다. 11월 20일 다리 부위의 종기가 손가락 머리처럼 부풀어 올라 고약을 바를 것을 의논한다. 이후 석 달 넘는 기간에 22종이나 되는 많은 고약을 붙이면서 종기를 치료한다.
문제는 똑같은 증상이 순조 34년, 45세 되는 해에 재발한 것이다. 그해 10월 28일 가벼운 두통 증세와 함께 대소변이 불순한 증상이 있다고 하여 순조에게 가미정기산이 처방된다. 11월 1일 기록을 보면, 종기가 재발해 메밀병으로 만든 고약을 종기에 붙인다. 메밀병은 순조 14년 9월에 사용한 바 있던 고약 종류다. 13일까지 종기 치료 목적으로 소담병자, 촉농고, 투농산 등 고약을 계속 붙이면서 치료했지만 순조의 종기 증세는 나아지지 않았다.
특기할 점은 종기가 진행됐음에도 탕약은 계속적으로 가미군자탕, 인삼이나 계피가 들어간 가감양위탕, 이공산 등 위장의 기력을 돕는 처방이 계속됐다는 점이다. 순조 사망의 직접적 원인은 종기였지만, 그가 한평생 밥 맛 떨어지는 인생을 살다갔음을 처방은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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