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종 썸네일형 리스트형 중종은 어떻게 조광조를 죽였나? 똥, 오줌을 약재로? 10월 24일부터 중종은 대변이 막혀 곤욕을 치른다. 10월 29일 대변이 통하자 한숨을 돌렸지만 임종의 그림자가 다가온다. 11월이 되자 심열과 갈증을 호소한다. 혀가 갈라지고 입이 마르고 손바닥에도 번열이 있자 청심환, 생지황고, 소시호탕 등 다양한 처방을 통해 치료한다. 재위 39년 11월 4일 의관들은 아주 특별한 약물을 처방한다. 야인건수(野人乾水)다. 은 이 처방을 이렇게 설명한다. "성질이 차서 심한 열로 미쳐 날뛰는 것을 치료한다. 잘 마른 것을 가루로 만들어 끓는 물에 거품을 내어 먹는다. 남자 똥이 좋다." 11월 8일 박세거가 들어가서 임금을 진찰하고 이렇게 적었다. "갈증이 줄어들고 열은 이미 줄었다." 중종도 이런 효험을 인정했다. "전일 열이 올랐을 때 야인.. 더보기 복통 호소하는 왕, 대장금의 화끈한 처방은… 조선의 왕들에겐 각자 믿고 의지하는 의사들이 있었다. 선조 때는 허준이 있었고, 광해군은 허임을 총애했는가 하면, 인조는 이형익을 믿고 자신의 몸을 맡겼다. 임금의 신체와 관련한 여러 가지 정보는 나라의 극비 사항에 속하는 중요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왕의 건강을 챙기고 심기를 안정시키는 의약에 관한 일의 총책임은 당연히 유학자인 사대부의 몫이었다. 내의원 제조라는 직책은, 치료 기술은 의사에게 맡기지만 그 논리적 타당성과 검증은 유학자가 맡아야 한다는 당위성에서 출발했다. 유학자 이이교(李利敎)는 이렇게 설명했다. '세상의 중심은 유학'이라고 외친 것이다. "내가 일찍이 술수에 관한 책을 본 적이 있다. 점을 치거나 의술을 펴거나 관상을 보는 것, 풍수를 논하는 것은 각각 하나의 기능에 치우친 것일 뿐이.. 더보기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