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 썸네일형 리스트형 정조 독살설의 진실, 수은이 아니라 인삼이 죽였다! 담배와 깍두기를 좋아한 정조 정조는 깍두기와 담배 애호가였다. 홍선표는 에서 이렇게 전한다. "200년 전 정조의 사위인 영명위(永明慰) 홍현주(洪顯周)의 부인(숙선공주)이 임금에게 처음으로 깍두기를 담가 올려 칭찬을 받았다고 한다. 당시에는 각독기(刻毒氣)라 불렀으며, 그 후 여염집에도 퍼졌다. 고춧가루 대신 붉은 날고추를 갈아서 쓰면 빛깔이 곱고 맛도 더욱 좋다." 무가 독을 없앤다는 각독기설은 에도 언급돼 있다. 두부를 즐겨 먹어 중독에 이른 한 두부 상인이 무즙을 먹고 두부 독을 없앴다는 얘기다. 아내가 두부 만드는 냄비에 실수로 무를 넣었는데 끝내 두부가 되지 않았다는 말을 기억하곤 실제로 무를 먹었더니 두부 독이 사라졌다는 것. 난을 피해 석굴에 들어간 사람이 적이 피워 넣은 연기에 질식해서 .. 더보기 종기·치질…정조가 마지막으로 선택한 약은? 강명길의 인생유전 가미소요산은 정조가 죽어가는 순간까지 애용한 처방이다. 이는 의 '소요유편(逍遙遊篇)' 내용과 관련이 있다. 큰 물고기가 대붕(大鵬)이 되어 우주에서 날개 치는 이야기인데, 소요산을 복용하면 마음이 상쾌해져 넓은 천지에 대붕이 자유롭게 날개 치는 듯한 기분이 든다고 한다. 가미소요산은 본래 부인에게 사용하는 경우가 많으며 생리 전에 화를 내거나 어깨 결림, 두통, 불면, 변비 증상이 있을 때 효험이 있다. 주로 갱년기 여성의 열이 오르는 증상에 쓰는 약을 강명길이 추천해 복용함으로써 정조는 신기한 효과를 봤다. 정조의 해묵은 화병에 갱년기 증세가 포함된 것을 파악한 강명길은 가미소요산으로 정조의 절대적 신임을 받는다. 에도 없는 약을 처방해 신기한 효험을 보자 정조는 강명길과 공동 저작.. 더보기 영조는 사도세자를, 사도세자는 정조를 죽였다 "세손(정조)은 문에 들어오자마자 곧 관을 벗고 손을 모아 애걸하였다. 영조가 멀리서 세손을 보고는 진노하여 말하기를 '어째서 세손을 모시고 나가지 않는가'라고 하였다. (…) 세손은 문으로 들어와 땅에 엎드린 후 세자(사도세자)에게로 점점 가까이 기어왔다. (…) 별군직이 세손을 안고 나가려 하자 세손이 저항했다." 승정원 사서 이광현의 일기는 사도세자가 뒤주에 들어가 죽는 장면을 여과 없이 기록했다. 아버지의 죽음을 지켜본 이후, 조선 제22대 왕 정조(1752~1800년, 재위 1776~1800년)의 삶은 화증(火症)으로 점철됐다. 어머니의 죽음을 지켜봤다고 알려진 경종이 간질, 화증을 앓다 일찍 죽은 것과 비교하면 초인적인 자기절제를 발휘한 것인지도 모른다. 사도세자의 광증은 영국의 정신과 의사 .. 더보기 "호러(horror), 호러(horror)…." '실패한 왕' 정조 정조의 독살설이 계속 제기되는 중요한 이유는 "그때 정조가 그렇게 갑작스럽게 죽지 않았더라면…" 하는 대중의 바람을 독살설을 주장하는 쪽이 업고 있기 때문이다. 과연 정조는 성공했을까? 정조의 대중적 이미지를 만드는데 일조한 드라마 . 얼마 전 정조 독살설을 놓고 한바탕 설전이 오고갔다. 나 역시 그 논란에 한마디 보탰는데, 여전히 독살 주장을 굽히지 않는 이들이 많은 듯하다. 한의학자의 입장에서 보면, 비교적 명백한 사안인데도 이렇게 논란이 계속되는 데는 "그때 정조가 그렇게 갑작스럽게 죽지 않았더라면…" 하는 대중의 바람을 독살설을 주장하는 쪽이 업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대중이 이렇게 정조 독살설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답답한 현실 정치 탓이 크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더보기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