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력제도 해결 못한 장희빈의 손자 욕망 썸네일형 리스트형 정력제도 해결 못한 장희빈의 손자 욕망 후사 잇기 위한 정력제 경종은 죽을 때까지 후사가 없었다. 이복동생 연잉군 영조에게 왕위를 물려주게 된 것도 그 때문이다. 야사(野史)에는 폐비된 장옥정이 사약을 받기 전 아들(경종)의 고환을 잡아당겨 고자로 만들었다는 설이 그럴듯하게 포장돼 있다. 경종은 9세 때 단의왕후와 혼인했고, 그녀가 죽고 나서 선의왕후와 재혼했을 뿐 단 한 명의 후궁도 두지 않은 유일한 왕이었다. 는 경종의 후사 문제를 한의학적 처방과 연결시켜 거론한다. 경종이 21세 되던 1708년, 즉 숙종 34년 2월 10일 는 임금이 소변이 자주 마렵다고 하는 점을 지적하면서 후사를 위해 육미지황원과 팔미지황원을 처방했다고 썼다. 한의학에서는 소변을 자주 보는 증상이 양기, 즉 정력과 관계가 깊다고 본다. 소변이 자주 마렵다는 것과 정.. 더보기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