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 썸네일형 리스트형 전태일과 박정희의 대결은 끝나지 않았다 전태일과 박정희의 대결은 끝나지 않았다 11.13 전태일 분신 "국가가 한 젊은이의 일자리를 막는 것도 큰 죄악입니다." 한일회담 반대 투쟁에 참여했던 운동권 대학생 출신 이명박이 1965년 시위 전력으로 취업이 어려워지자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냈다는 편지다. 그 덕분인지 이명박은 현대건설에 입사해 회장 자리에까지 오르는 성공 신화를 써 나가게 되었다. 4년 뒤 청계천 피복 공장에서 재단사로 일하던 청년 전태일이 박 대통령에게 편지를 썼다. "저희들은 근로기준법 혜택을 조금도 못 받으며 더구나 2만여 명을 넘는 종업원의 90% 이상이 평균 연령 18세의 여성입니다. 기준법이 없다고 하더라도 인간으로서 어떻게 여자에게 하루 15시간의 작업을 강요합니까? (……) 1개월에 첫 주일과 셋째 주일, 2일은 쉽니다.. 더보기 해방 공간의 '전태일'들, 망각의 늪에서 구하라 해방 공간의 '전태일'들, 망각의 늪에서 구하라 기억 저편의 뜨거운 역사, 9월총파업 1970년 청계천의 봉제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 전태일은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라고 외치며 책을 안은 채 자기 몸에 불을 질렀다. 이 사건을 계기로 자신의 위치와 권리를 자각하기 시작한 노동자들은 1979년 YH무역 여성 노동자들의 신민당사 농성 사건, 1980년 동원탄좌 노동자들의 사북항쟁을 거치며 의식적인 노동계급으로 성장해 갔다. 마침내 1987년 6월항쟁에 뒤이은 7, 8, 9월 대투쟁으로 노동자들은 그토록 염원하던 민주 노조를 갖게 되었고, 그 힘이 1995년 41만여 조합원을 아우르는 민주노총으로 결집했다. 민주노총은 1996년 12월 정리해고를 법제화하려는 노동법 개악에 맞서 연인원.. 더보기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