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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

시대의 색골 연산, 죽음 앞에서 찾았던 여인은? 시대의 색골 연산, 죽음 앞에서 찾았던 여인은? 정력에 좋다며 백마에 메뚜기까지 사실 연산군은 패륜적으로 성에 집착했던 것치곤 자식 농사가 신통치 않았다. 왕후 신 씨에게서 2남 1녀, 후궁에게서 2남 1녀로 성종이 16남 12녀를 둔 것과 비교할 때 사뭇 왜소해 보이는 건 그의 찔끔거리는 소변 기능과도 관련이 깊다. 실제로 양기가 모자랐던지 연산군 9년엔 양기를 보충하려고 백마를 골라 내수사로 보낼 것을 명한다. 우리 역사상 가장 엽색적인 행각을 벌인 것으로 기록된 사람은 고려 시대의 신돈이다. 성현의 엔 신돈의 엽색 행각이 적나라하게 적혀 있다. "신돈의 권세가 커지자 사대부 중에 얼굴이 어여쁜 아내와 첩을 둔 자가 있으면 매번 허물을 씌워 감옥에 넣었다. 그러고는 만약 주부가 찾아와서 남편의 억울함.. 더보기
백모까지 넘본 색정광, 오줌 못 가린 사연은? 백모까지 넘본 색정광, 오줌 못 가린 사연은? 연산군이 특히 좋아했던 음식은 소의 태(胎)다. 농업 국가인 조선에선 소를 식용으로 도축하는 걸 엄격히 규제했다. 태조 이성계가 재위 7년 9월의 교지에서 "소와 말의 사사로운 도살을 엄금한다"고 한 것을 비롯해 곳곳에서 우유의 음용마저 제한했다. 더욱이 소 전염병으로 농우(農牛)가 줄면서 경작의 어려움을 덜기 위해 왕들마저 반찬으로 쇠고기를 먹는 걸 부담스러워했다. 연산군은 완전히 역주행한다. 실록 11년 4월 20일 잔치마다 쇠고기를 쓸 것을 전교한다. 실록의 기록이다. "이로부터 여느 때의 흥청을 공궤(음식을 줌)하는 데에도 다 쇠고기를 쓰니, 날마다 10여 마리를 잡아 수레로 실어 들였다. 노상에서 수레를 끌거나 물건을 실은 소까지도 다 빼앗아 잡으니.. 더보기
수박에 딴죽 걸다 능지처참…연산군은 왜? 수박에 딴죽 걸다 능지처참…연산군은 왜? 조선 왕들 중 부모의 비참한 죽음을 알거나 목격한 사람은 3명이다. 연산군, 경종, 정조다. 연산군의 어머니 폐비 윤 씨는 사약을 받고 일찍 세상을 떠났다. 경종의 어머니 장희빈은 인현왕후를 저주하다 사약을 받고 죽었다. 장희빈이 죽은 시점과 경종의 병력(病歷)이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그가 복용한 처방들은 간질을 치료하는 것이었다. 정조는 평생 화증(火症)에 시달려 인삼은 거의 입을 대지 못할 정도였다. 스코틀랜드의 정신과 의사 로널드 데이비드 랭은 광기를 이렇게 평했다. "광기는 정상으로 돌아가기 위한 돌파구다." 조선 역사상 성군(聖君)의 길을 가장 극렬히 역주행한 광기의 폭군으로 기록된 연산군, 그를 바라보는 좌표는 바로 어머니다. 연산군을 '있어선 안..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