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금 썸네일형 리스트형 복통 호소하는 왕, 대장금의 화끈한 처방은… 조선의 왕들에겐 각자 믿고 의지하는 의사들이 있었다. 선조 때는 허준이 있었고, 광해군은 허임을 총애했는가 하면, 인조는 이형익을 믿고 자신의 몸을 맡겼다. 임금의 신체와 관련한 여러 가지 정보는 나라의 극비 사항에 속하는 중요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왕의 건강을 챙기고 심기를 안정시키는 의약에 관한 일의 총책임은 당연히 유학자인 사대부의 몫이었다. 내의원 제조라는 직책은, 치료 기술은 의사에게 맡기지만 그 논리적 타당성과 검증은 유학자가 맡아야 한다는 당위성에서 출발했다. 유학자 이이교(李利敎)는 이렇게 설명했다. '세상의 중심은 유학'이라고 외친 것이다. "내가 일찍이 술수에 관한 책을 본 적이 있다. 점을 치거나 의술을 펴거나 관상을 보는 것, 풍수를 논하는 것은 각각 하나의 기능에 치우친 것일 뿐이.. 더보기 장금이는 정말로 '명의'였을까? 대장금의 진실 최근 드라마 이 아시아를 넘어서 러시아에서 방송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또 드라마에서 대장장 역을 맡았던 배우 이영애의 결혼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드라마의 힘 때문에 허준과 함께 한의학의 상징처럼 된 대장금은 과연 실존 인물일까? 에 대장금의 기록이 나오는 걸 보면 그가 실존 인물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당시 여의의 처지를 염두에 두면 드라마의 내용이 과장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많았다. 여기서는 대장금의 기록을 염두에 두고, 그를 둘러싼 진실을 한 번 살펴보자. 대장금이 실록에 처음 등장한 것은 중종 10년(1515년) 3월 8일이다. 중종의 계비 장경왕후가 그해 2월 25일 원자(12대 인종)를 생산하고 숨을 거둔다. 이 때 원자인 인종의 생명도 위험에 처했는데, 이때 장금이 결정.. 더보기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