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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도 빈 라덴 같은 테러리스트? 당찮은 소리

蓮義郞 2014. 7. 24. 12:00

김구도 빈 라덴 같은 테러리스트? 당찮은 소리

9.11에 돌아본 테러와 의혈 독립 투쟁

9.11 테러의 연출자 오사마 빈 라덴은 2011년 5월 2일 자신을 집요하게 쫓던 미군의 총탄에 맞아 저승으로 갔다. 그는 악마인 미 제국주의와 성전(聖戰)을 벌인 끝에 장렬히 산화했으니 천사의 인도를 받아 천국으로 갈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험상궂은 인상의 저승사자는 천만뜻밖에도 지옥행을 명령했다.

빈 라덴은 당황했다. 그는 저승사자의 소맷부리를 부여잡고 물었다.

"잠깐만! 혹시 천국에 김구라는 분이 계시지 않습니까?"

저승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빈 라덴은 그분을 한 번만 뵙게 해 달라고 간청했다. 저승사자는 조심스럽게 천국에 연락을 넣었고, 김구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빈 라덴 앞에 나타났다.

"당신이 미국과 싸우다 죽었다고요? 나는 미국과 싸운 적은 없지만 미국에 섭섭한 게 많았던 사람이지. 그래, 무슨 일로 나를 보자고 한 게요?"

"선생님과 저는 같은 해방 투사입니다. 선생님이 천국에 계시다면 저도 마땅히 천국에 있을 자격이 있습니다."

김구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삼천리금수강산을 짓밟은 일제에 쫓겨 이역만리 중국 땅을 전전하던 나날들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말해 보시오. 우리가 어떤 점에서 같은지."

  ▲ 빈 라덴

김구와 빈 라덴이 만났다면…

빈 라덴은 거침없이 자신과 김구의 공통점을 나열했다.

김구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령이던 1931년 한인애국단이라는 의열 투쟁 조직을 만들었다. 1932년, 이 조직의 무장 투쟁 방침에 따라 이봉창은 도쿄에서 히로히토 일본 천황을 향해 폭탄을 던지고, 윤봉길은 상하이 훙거우 공원에서 일본 침략군 지휘관들을 향해 폭탄을 던졌다. 이런 일련의 행동은 세계인, 특히 일본과 싸우고 있던 중국인에게 한국인의 독립 의지를 확실히 각인시켰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부호인 빈 라덴은 1979년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자 이슬람 구제기금인 알 카에다를 만들어 아프간 게릴라 무자헤딘의 반소 항쟁을 지원했다. 알 카에다는 1988년 무장 조직으로 전환하고 소련군이 물러간 뒤에도 활동을 계속하다가 1991년 미국이 걸프전을 일으키자 반미 조직으로 전환했다. '유대인과 십자군에 대항하는 국제 이슬람 전선'을 자처한 알 카에다의 요원들은 30여 개 국가에서 활동하며 미국과 서방 국가들에 대한 자살 폭탄 테러, 파괴, 암살 등을 자행해 왔다.

"선생님과 저는 똑같이 거대한 힘을 가진 압제자와 맞서 싸웠습니다. 그 과정에서 폭력을 사용했고 꽃다운 젊은이들을 희생시켰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악마와 맞서 싸우기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었습니다."

김구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나던 이봉창과 윤봉길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오랜 침묵이 흐른 뒤에야 그는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러면 나는 당신과 내가 다른 점에 대해서 이야기하겠소. 해방을 위한 싸움에서 폭력이 불가피했던 것은 맞소. 하지만 나는 그 폭력을 무고한 민간인에 대해 사용한 적이 없소. 그러나 당신은……."

김구는 말을 잇지 못했다. 2001년 9월 11일 알 카에다가 뉴욕 상공에서 연출한 것은 암울한 21세기를 예고하는 지옥도(地獄圖)였다. 그들은 4대의 민간 항공기를 납치해 그중 2대를 110층짜리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에 충돌시켰다. 1대는 미 국방부 청사로 돌진하고 1대는 목표를 벗어나 곤두박질쳤다. 4대의 항공기에 타고 있던 승객 266명은 모두 죽고, 쌍둥이 빌딩이 무너져 내리면서 죽거나 실종된 사람은 2500~3000명에 달했다.

오사마 빈 라덴은 미국의 범죄를 방관하는 자들 역시 자신의 적이라면서 미국과 미국인을 구별하지 않았다. 나아가 9.11 테러의 대상은 사실상 전 세계였다. 그날 이후 세계 각국의 시민들은 어느 순간 가루가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 비행기를 타고 열차에 오르고 고층 빌딩의 엘리베이터에 몸을 싣고 있다.

그러나 김구는 폭력을 써야 할 적의 범위를 명확히 제한하고 그대로 실행했다. 임시정부가 발행한 기관지 <독립신문>은 1920년 2월 5일 자 1면을 '칠가살(七可殺)'이라는 좀 으스스한 제목으로 시작했다. 여기서 죽여도 좋은 일곱 부류의 사람으로 지목된 대상은 '적괴(敵魁, 적의 우두머리), 매국적(賣國賊), 고등경찰 및 형사·밀고자, 친일 부호, 총독부 관리, 불량배, 모반자'였다. 첫 번째를 차지한 '적괴'는 총독·정무총감 따위 일본인 고위층을 가리키는 말이다. 항간에는 이 말이 '일본인'으로 잘못 풀이되어 유포되기도 했는데, 이는 중대한 오류이다.

"더 중요한 차이가 있소. 나는 미력하나마 세상의 진보에 힘을 보탰다고 생각하오. 우리의 항일 투쟁은 제국주의에 신음하던 식민지 민중이 해방을 쟁취하는 데 작은 밑거름이 되었소. 그러나 당신의 테러 활동은 이 세상을 내가 살던 시대보다 더 나쁜 지옥으로 만드는 데 일조했을 뿐이오."

김구의 말을 끝으로 저승사자는 빈 라덴의 팔을 잡아끌었다. 빈 라덴은 여전히 납득하지 못하는 표정으로 끌려갔다. 그러나 그는 어차피 천국에 가도 편치 못할 운명이었다. 그가 죽인 무고한 영혼들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반면 김구가 죽인 침략자들은 지옥에서 영원한 고통을 맛보고 있으므로 김구가 천국에 있는 것은 당연했다.

김구가 꿈꾼 세상, 빈 라덴이 만든 지옥

 ▲ 김구

저세상에서 김구와 빈 라덴이 만나는 장면은 물론 가상이다. 가상을 설정한 건 김구가 빈 라덴 같은 테러리스트와 그 본질에서 다른 점이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을 품는 이가 일각에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사람이 펼친 활동의 역사적 맥락과 영향을 살펴보면, 이 둘은 다르다는 걸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김구는 현대 정치학의 기준으로 보면 우익이다. 우익에는 '보수'라는 수식어가 붙기 마련이지만 김구는 보수가 아니라 진보였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민족 해방이라는 과제에 관한 한 철저히 진보적이었다. 이후의 세계는 김구를 넘어서 민족의 독립뿐 아니라 민족 간, 계층 간 불평등의 해소로 나아가야 했다. 인류는 그러한 진보의 장정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기도 했지만, 김구의 시대에는 예상치 못했던 변수들이 등장하면서 지척거리기 시작했다. 특히 1990년대 이후 이러한 지척거림은 커졌다.

세계가 더 좋은 미래로 나아가는 것을 가로막는 요소 가운데 하나가 미국인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미국은 현대 세계에 대한 자신의 공헌을 내세우며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약소국의 권리를 무시하고 억눌렀다. 이처럼 오만한 미국의 일방주의는 냉전이 끝난 뒤 더욱 심해졌다. 수백, 수천 명의 김구가 다시 태어나도 이 문제를 풀 수는 없었다. 그것은 단지 미국과 다른 나라의 문제가 아니라 이른바 '1%'의 기득권 세력과 그 밖의 모든 인류 사이의 문제이므로 다수 대중의 진지한 고민과 공고한 연대가 아니면 풀 수 없으리라는 것이 점점 분명해지고 있었다. 그런 시점에 알 카에다가 미국과 세계를 향해 자살 테러를 감행하고 만 것이다. 빈 라덴은 김구와 공통점을 강변하지만 9.11 이후의 세계가 어디로 갔는지 잠깐만 살펴봐도 그것이 얼마나 진실과 동떨어져 있는지 알 수 있다.

김구는 어쩌면 세상을 천국에 좀 더 가까이 갖다 놓기 위해 자기 자신은 지옥으로 갈 각오를 했던 사람이다. 반면 빈 라덴은 자신이 천국으로 가기 위해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어 버렸다. 지금도 자신의 천국행을 위해 이 세상을 제물로 삼아 농락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은 천국에 그들의 자리가 없다는 것을 명심해 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