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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史

[홍익인간 7만년 역사 -29] 배달나라 시대의 제도문화 7 배달나라 시대에는 문명생활(文明生活)을 영위하였다. 종교, 철학, 천문지리, 역법, 문자, 학문, 농사, 의약 등 외에도 경제적, 군사적, 사회적 문명생활을 하였던 것이 된다. 12. 기타 문명생활 배달나라는 천왕(天王) 아래 중앙의 삼사오가(三師五加)와 지방의 기본 5부(部)와 9족(族)으로 형성된 나라였으며, 12자치 제후의 천자국(天子國)을 둔, 강력한 군사력, 정치력을 바탕으로 한 나라였다. 천왕이 머무는 곳에 궁실(宮室)을 건축하고, 우사(雨師) 왕금영(王錦營)으로 하여금 사람이 살 곳을 만들어 거주하는 법을 가르치게 하였으며. 또 소, 말, 개, 돼지, 독수리, 호랑이 등을 길들여 목축을 하고 가축으로 기르는 법을 가르치게 하였다. 특히 소, 말, 개, 돼지는 오가(五加) 제도에서 보듯이 이미.. 더보기
[홍익인간 7만년 역사 -28] 배달나라 시대의 제도문화 6 서기전3218년경 염제신농(炎帝神農)은 의약(醫藥)을 발전시켰다. 손수 풀을 뜯어 맛을 보면서 약효(藥效)를 연구하였다. 염제신농은 배달나라 유웅국의 시조인 소전씨(少典氏)의 아들로서 농사담당인 우가(牛加)를 지낸 인물이며, 뒤에 산동 서쪽 지역의 진(陳) 땅을 중심으로 하였던 태호복희(太晧伏羲)의 나라를 접수하여 염제국(炎帝國)의 시조가 되었다. 배달나라 제후국인 염제국은 배달나라 제도를 본땄음이 분명한 바, 농사짓는 법, 농기구 제작법, 시장(市場)을 통한 물물교환, 문자, 혼인법 등을 시행하였던 것이 된다. 서기전2700년경 자부선인(紫府仙人)은 발귀리(發貴理) 선인(仙人)의 후손으로서 도학(道學)의 학문이 높았다. 자부선인의 학문이 배달나라 학문을 대표한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자부선인은.. 더보기
[홍익인간 7만년 역사 -27] 배달나라 시대의 제도문화 5 배달나라 시대에 한웅(桓雄) 천왕이 8음 2문을 수학하였다는 부도지(符都誌)의 기록은, 단순한 의사소통을 넘어서서 사해제족(四海諸族)을 순행하며 홍익인간 세상을 실현하기 위한 한 과정으로서 학문을 닦았다라고 하는 것이 된다. 11. 학문의 발전 실제로 배달나라 시대는 심신수련(心身修練)의 철학(哲學)과 천문지리(天文地理)와 역법(曆法) 등의 학문이 융성하던 때이다. 학문을 하는 풍조가 생긴 것은 사람들이 본성을 깨닫지 못하고 혼매하게 되어 배우지 아니하고서는 알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부도지에서는 적고 있다. 서기전3897년경 한국(桓國)에서 반고(盤固)라는 자는 술법(術法)을 좋아하여 10간(干) 12지(支)의 (神將)이끌고 삼위산(三危山)으로 가서 제견(諸畎)의 가한(可汗)이 되었다라고 하는 반면.. 더보기
[홍익인간 7만년 역사 -26] 배달나라 시대의 제도문화 4 배달나라 시대에 율법이 있었다. 율법은 백성들을 계도(啓導)하는 법이다. 특히 세상이나 지상에 남김이 없도록 하는 법이 있어 무여율법(無餘律法)이라 한 것이다. 9. 무여율법(無餘律法) 4조(條) 세상이나 지상에 남김이 없도록 함으로써 세상을 깨끗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는 홍익인간(弘益人間) 사상과도 일맥상통한다. 무여율법은 환부(鰥夫)가 조절(調節)하였는데, 환부는 무여율법의 집행을 맡은 그 직책의 명칭이 된다. 부도지(符都誌)에서 기록하는 무여율법은 다음과 같다. 1. 사람의 행적(行蹟)은 수시로 깨끗하게 구제하여 생귀(生鬼)가 모르는 사이에 맺히지 않도록 하며, 번거롭게 머물러서 마귀(魔鬼)가 되지 않도록 하여, 인간세상을 밝게 통하게 하고, 한 가지 장애라도 남지 않도록 하라. 2. 사람의 .. 더보기
[홍익인간 7만년 역사 - 25] 배달나라 시대의 제도문화 3 8. 언어문자(言語文字) 배달나라 시대에 한웅(桓雄)이 8음(音) 2문(文)을 수학(修學)하였다라고 부도지(符都誌)에서 기록하고 있다. 배달나라는 한국(桓國)에서 파견되어 세워진 나라로서 한국시대가 마감되고 배달나라가 한국을 계승한 것이 된다. 그래서 한국이 9족의 나라이므로 배달나라 또한 9족의 나라가 된다. 다만, 한웅천왕이 황하 중상류지역의 태백산을 수도로 삼아 호족과 웅족의 난을 진압하고 다스린 나라로서 나라의 중심이 옮겨진 것이 된다. 서기전5000년경에 9족은 씨족(氏族)을 넘어선 광할한 지역에 걸치는 대단위의 부족(部族)으로서 자치성이 정립되어 독자적인 언어문자가 형성되었다고 보인다. 통상적으로 문자보다는 말이 먼저가 될 것이다. 그래서 9부족의 한국시대가 약1,000년 이상 흐르면서 9족이.. 더보기
[홍익인간 7만년 역사-24] 배달나라 시대의 제도문화(2) 5. 역법(曆法) 제도 배달나라 시대 역법은 기본적으로 한국(桓國) 시대 역법을 따른 것이 되는데, 1년의 주기가 365.24219907일(日)이라고 처음으로 숫자로 기록되고 있다. 한국(桓國) 시대에 1년을 몇일로 하였는지는 정확한 기록이 없으나, 윷놀이판에 나타난 역법의 원리로 보면 365일, 366일로 계산한 것으로 된다. 윷놀이판에 나타나는 역법이 한역(桓易)이며, 서기전3500년경 태호복희가 이 한역을 8괘역으로 정리한 것이다. 윷놀이판에 나타나는 사방, 팔방, 십이방의 역을 태호복희는 8방의 역으로 정리한 것이 된다. 한편, 태호복희는 하루를 12시간대로 하는 역(易)을 정립하였는데, 이것은 지금도 우리가 12지지(地支)를 써서 하루를 표시하는 방법 그대로이다. 10천간(天干) 12지지(地支).. 더보기
[홍익인간 7만년 역사-23] 배달나라 시대의 제도문화 1 1. 천왕랑(天王郞)과 천웅도(天雄道) 천왕랑은 천웅도(天雄道)를 닦는 심신수련 단체이다. 천웅도는 천웅(天雄) 즉 하늘나라 스승으로서의 도(道)이다. 천왕랑은 정신적으로는 하늘나라 경전인 천부경(天符經), 삼일신고(三一神誥), 참전계경(參佺戒經)의 가르침을 배우고 깨닫고 실천하며, 육체적으로는 삼일신고와 참전계경의 가르침을 따라 수련함으로써, 무리들을 직접 교화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던 것이 된다. 즉 천왕랑은 몸과 마음 공부로써 홍익인간 세상을 실현하는 이화세계(理化世界), 접화군생(接化群生)의 일선에 서는 무리이다. 천왕랑(天王郞) 제도는 단군조선 시대에도 천지화랑(天指花郞), 국자랑(國子郞), 천왕랑(天王郞)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하였으며, 고구려의 조의선인(皁衣仙人)의 선인도랑(仙人徒郞) 제도에 연결되.. 더보기
[홍익인간 7만년 역사-22] 호족과 웅족의 난, 평정과 홍익인간 세상 1. 호족과 웅족의 평정(平正) 서기전3897년 갑자년 10월 3일 태백산 아래에 신시(神市)를 수도로 삼고 배달나라를 연 한웅천왕(桓雄天王)은, 호족과 웅족에게 짐승이 아닌 진정한 인간(人間)으로서 살도록 기회를 주었다. 즉 무력(武力)으로 진압하기 이전에 가르침을 내렸던 것이다. 한웅천왕은 호족과 웅족의 추장(酋長)에게 하늘과 땅과 인간만물이 원래 하나에서 나왔음을 알게 하고, 인간존중과 만물평등의 홍익인간(弘益人間) 철학을 담고 있는, 천부경(天符經), 삼일신고(三一神誥), 참전계경(參佺戒經) 등 천부(天符)의 가르침을 주어 따르도록 인도하였다. 그런데, 웅족의 추장 웅녀(熊女)는 한웅천왕의 가르침을 받들어 쑥 한 다발과 마늘 20개를 받아 사악한 마음을 비우고 인간본성(人間本性)을 깨닫기 위하여 .. 더보기
[홍익인간 7만년 역사-21] 한웅천황의 개천 한웅(桓雄)은 서기전3923년 무술년(戊戌年)에 한국(桓國) 7대 지위리(智爲利) 한인(桓因)의 여러 아들 중 하나로 태어나 어릴 적부터 천왕랑(天王郞)이 되어 천웅도(天雄道)를 닦았다. 한웅은 천왕랑이 되어 심신수련을 하던 중 호족과 웅족의 전쟁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 듣고 이들의 전쟁을 진압할 계획을 미리 세워 놓았다. 서기전3900년경 한웅은 서자부(庶子部) 대인(大人)으로 명을 받고서 직책을 수행하던 중, 서기전3898년경에 조정(朝廷)에 들라는 지위리 한인의 명을 받고 알현하였다. 이에 지위리 한인은 삼사오가(三師五加)들과 의논한 결과를 알려 주며 태백산(太白山)으로 가서 시끄러운 세상을 바로잡아 홍익인간(弘益人間) 하라 명을 내렸던 것이다. 지위리 한인으로부터 천부삼인(天符三印)을 전수받은 한웅.. 더보기
[홍익인간 7만년 역사-20] 한국시대 말기의 혼란과 한웅의 출현 1. 호족과 웅족의 전쟁 서기전4000년경에 이르러 홍익인간의 시대가 호족과 웅족의 전쟁으로 시끄러워지기 시작하였다. 파미르고원이 서기전10000년경에 오미(五味)의 난(亂)으로 실낙원(失樂園)이 시작되어, 서기전8000년경에 파미르고원에서 먼저 동쪽으로 나가 정착하였던 지소씨(支巢氏)의 무리는, 서안(西安) 부근을 비롯한 황하(黃河) 상류지역을 중심으로 하여 사막지대에 정착하여 살았다. 이들 지소씨족의 무리는 서기전7197년경에 파미르고원을 떠나 그들의 정착지역으로 이동해 오던 황궁씨(黃穹氏)의 일부 무리들에게 텃세를 부려 배척하였고 심지어 쫓아가서 죽이기까지 하였다. 그후 약3,000년이 더 흘러 한국(桓國) 말기가 되면서 홍익인간 세상이 지소씨 무리의 집단 이기주의로 인하여 혼란기에 접어 들었던 것..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