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醫學/협심증

협심증이란 무엇인가


동양에서는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는 육체가 아니라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 정신(精神)이라고 하여 소우주라고 일컬어 왔습니다. 또한 이 보이지 않는 정신을 관장하는 기관은 심장이며, 따라서 심장이란 곳에는 병이 절대로 올 수 없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병이 오면 안 되는 이곳을 일러 동양의학에서는 군주지관(君主之官)이라 하였습니다. 이것은 곧 한 나라의 임금과 똑 같다는 의미입니다. 한 나라에 임금이 없다면 외부의 세력에게 침략을 당하여 나라를 유지하지 못하듯이 정신을 관장한다는 것은 곧 생명을 관장한다고 볼 수도 있기 때문에 이것은 오장육부 중에 군주지관은 오직 심장일 뿐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 심장은 너무나 중요한 까닭에 다른 장기와는 다르게 심장을 보호하는 장기가 따로 별도로 하나 더 있습니다. 그것은 심장을 싸고 있는 막으로 동양의학에서는 심포(心胞)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심포란 즉 심장의 바깥인 심장의 외막에 혈액을 공급하여 심장근육을 움직이게 하는 별도의 장기(臟器)입니다. 이 심포라고 하는 기관에 병이 온 것을 심통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현대의학에서 말하는 심혈관에 경색이 오게 되어 가슴이 답답하고 이유 없이 등이 아프며 심한 경우 숨을 쉬기가 어려워지게 되는 이런 증세의 병을 일러 협심증이라고 말합니다. 이처럼 심장을 싸고 있는 심혈관의 경색은 곧 근육의 마비로 이어지고 심장근육의 마비는 나타나면 안 되는 병이니 늘 조심하여야 합니다. 만약에 감정의 급격한 변화나 음식으로 인한 급체 혹은 격한 운동으로 숨이 차게 된다면 응급상황이 오게 되어 위험하게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바로 심장마비로 바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임상에서는 협심증의 단독질환 보다 선행질환의 뒤에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남자의 경우에는 그 원인이 매우 많다고 할 수 있는데, 선천적인 가족력, 스트레스, 혹은 과음 과식, 또는 운동 부족 등에서 나타나는 것인지 나눌 수가 있습니다. 즉 성격이나 업무관계 등을 살펴야 하고 혹은 고지혈증이 수반되는 비만이나 과도한 흡연 또 성인병 질환인 당뇨병이나 혹은 통풍으로 오는 것인지 여러 가지를 따져 보아야 합니다.

여자인 경우에도 남성의 경우와 같은 비만이나 당뇨병이 있어서 이 병이 오는 경우도 있을 수 있지만 대부분 여자만이 겪는 가슴을 졸여야 하는 비밀이나 가정사 기타 감정의 기복이나 울화병 등등 그 원인이 남자인 경우보다 제한되어 있어 세심한 관찰이 필요합니다.

협심증은 이처럼 그 원인이 여러 가지인 만큼 병의 치료에 있어서도 똑같이 처방구성에 있어서 복잡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또 늘 숨이 차게 되는 이유들이 살아가면서 늘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언제든지 위험한 상황이 오게 된다는 것이며 위험한 응급시에는 거의 죽음의 문턱에 늘 다가가 있다는 점에서 그 어떤 병보다 조심스럽게 접근하여야 하고 관찰과 관리가 요구되는 것입니다.

이미 통풍질환을 이야기하면서 협심증에 대한 언급을 하였는데, 협심증이나 통풍 또는 중풍의 경우에 이르기까지 이들 병의 이름만 다르고 병의 부위만 다를 뿐 사실은 병이 다 똑같은 병입니다.

그 이유는 통풍을 이야기하면서 이미 언급 하였고, 또 협심증에 대한 글도 자주 올려 통풍환자나 협심증, 중풍환자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질환을 함께 이해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이처럼 똑같은 병이라 하더라도 개인의 체질에 따라 환경에 따라 달리 올 수밖에 없으니 개인의 성격이 가슴을 졸이는 불안한 마음의 소유자라면 협심증이 올 것이고 폭발하는 감정을 자주 보인다면 중풍에 가깝게 갈 것이고 안락한 마음으로 낙천적으로 사는 사람인 경우에는 통풍의 병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이는 병은 같다고 하더라도 개인의 장기(臟器)에 따라 얼마나 그 장기가 발달하였는가 그리고 후천적으로 병이 오더라도 잘 지켜주는 가의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또 병이 오는 경우에도 선천적으로 약하게 태어난 장기에 또 후천적인 환경에 또 노출되어 집중적인 공격을 받게 된다면 어떤 원인으로 병이 왔는지는 추적해 볼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심장에 병이 온 이 경우에 현대의학의 치료방법은 오직 외과의 영역으로만 치료하고 있을 뿐입니다. 심혈관이 막혔는지 안 막혔는지를 심장조영술을 통해 확인하여 혈관이 완전히 막힌 경우에는 심혈관내에 인공 알루미늄관인 카테타를 대퇴부인 서혜부를 통해 삽입하게 됩니다. 문제는 수술 이후입니다.

이 수술을 받게 되면 심혈관 내에 혈액응고의 방지를 위하여 평생 약을 먹게 됩니다. 혈전용해제라는 약을 평생 먹는 것도 고역이지만 심장의 박동이 심해지는 운동이나 겪한 감정의 이후에는 수술 전과 동일한 문제가 발생할 수가 있고 만약에 심장이 좋아질 경우 심장의 박동과 함께 같이 뛰지 못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심혈관의 압력은 헛바퀴를 돌게 됨으로 인하여 더 올라 갈 수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왕 이런 과학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으니 과학과 의학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하면, 현대의학은 실로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였습니다. 심장질환에 대한 의학의 발달은 곧 현대 서양의학의 발달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과학의 발달과 함께 지난 수십 년간 의학에 있어서도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는데, 지금은 달리 방법이 없는 죽어가는 생명에게 장기이식까지 가능한 세상이 된 것입니다. 이미 토끼의 심장을 떼어다가 다시 다른 토끼에 이식하는 것이 성공하였고 돼지 심장을 인간에게 이식하는 것까지 가능하게 되었으며, 인간의 심장을 인간에게 이식하는 것 역시 성공한 것입니다. 이런 모든 것들은 과학이 어디까지 발전하였는가를 보여주는 의학에 있어서의 엄청난 대변혁이라고 자랑할 만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인간에게 장기이식을 하지 않고 미리 조치하는 방법이 없었는가에 대한 것도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의학은 과학입니다. 과학이란 그야말로 미시 세계를 지향하는 학문으로 하나의 사물을 쪼개고 나누는 것을 일러 과학이라고 말합니다.

하나의 의원있다면 외과와 내과로 나누어지는 샘입니다. 또 외과는 정형외과 신경외과 성형외과로 나누고 내과는 뇌종양내과 흉부내과 소화기내과 등등으로 또 나뉘게 됩니다. 또 정형외과를 따로 나누고 신경외과를 또 나누고 성형외과를 또 나누고 등등등. 이렇게 현대의 의료체계는 계속해서 나누고 또 나누어질 것이 분명합니다. 결국 이렇게 나누어 가장 극단까지 나누어 낸다면 현대의학은 과학화된 초현대식 의학으로 변모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궁극에 가서 인간의 질병을 이렇게 세분화한다고 하면 그 대상인 인간의 육체는 어떤 의미일까요? 분명 인간의 육체가 아닌 생명이 없는 한갓 미시생물 아니 단세포에 불과한 물질이 되지 않을까요?

동양에서 과학과 반대되는 말은 철학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나누어진 것을 합하여 하나로 만드는 것을 일컫습니다.

동양과 서양은 그 출발점이 완전히 다른 반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대의 서양의학을 하는 사람들은 동양의학을 과학적이지 못하다고 하여 이해하려 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현대의학의 구조적 모순 즉 생명체라고 하는 것, 육체와 육체속의 생명력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 간과했기 때문으로 생각됩니다. 과학을 의학으로만 인정하려 하다 보니, 인간의 구성요소 중에 절대다수인 정신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며 인간에게 있어서 정신을 육체와 동시에 연결하는 데 문제가 생기고 만 것입니다.

인간을 물질화하는 것은 동양에서는 너무나 금기한 것도 사실이지만, 아무튼 현대의학은 결국 물질의 노예로 인간을 정의하고만 꼴이 된 것입니다.

인간은 살아있는 생명체입니다. 이 생명체를 구성하는 것은 절대 육체만이 아닙니다.

인간은 미시세계인 인간의 육안으로 구분할 수 있는 과학의 대상인 육체도 있지만 또한 동시에 거시세계인 철학의 대상이 되는 보이지 않는 정신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육체는 과학의 대상이 되는 물질임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의학의 대상인 인간의 육체 또한 죽은 시체가 아닙니다. 엄연히 살아있는 이 육체 속에서 이 육체를 제어하고 통솔하는 어떤 에너지에 의해 움직이는 생명체일 뿐 절대 무생물이 될 수 없습니다.

너무나 다른 점이 여기에서 구분됩니다. 동서양의 의학이 이 대목에서 하늘과 땅 차이만큼 구분되는 것입니다.

육체에 온 질병을 치료함에 있어서 동양의학은 살아있는 육체를 움직이게 하는 이 에너지(氣)에 대해 치료의 주안점이 있는 것입니다. 이 에너지가 바로 가고 있는 것인지 거꾸로 가고 있는 것인지, 이 에너지가 너무 건조한 지 축축한 지, 이 에너지가 너무 찬지 너무 뜨거운지 등등 육체를 움직이게 하는 이 에너지를 직접 치료하는 것이 동양의학이라면, 서양의학은 이 육체를 움직이게 하는 에너지를 이해하지 못했으니, 그 이유는 서양의학 자체가 과학에서 출발하였기 때문인 것입니다.

서양의학에서 인간의 육체는 오직 과학의 대상이 되는 물질일 뿐 철저히 생명 자체에 대한 방법이 없었습니다. 따라서 치료약물에 있어서도 약물의 생명력은 도외시 하고 약물의 특정분자나 특정요소만 추출하는 과학적 방법만 그대로 연결하여 해열제, 지혈제, 이뇨제, 소염제, 항균제, 항생제 등등 육체 속의 에너지를 직접 제어하고 조절하는 약물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인간의 육안으로 구분할 수 있는 것은 제일 바깥에는 피부가 있고 또 그 속에는 살이 있고 또 그 속에는 근육이 있고 또 그 속에는 뼈가 있습니다. 이를 우리는 이미 과학이라고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현대의 과학은 현미경의 발달로 이를 더 세분화하여 살 속에 있는 세포를 알아내었고 또 이 세포를 더 과학화하여, 세포속의 핵과 미토콘드리아 전자 등등으로 또 구분하였으며, 또 핵을 또 더 과학화하여, 핵 속에 있는 핵세포의 이름까지 계속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과학입니다.

과학이란 사실 이런 것일 뿐인데 동양의 의학을 과학적이지 못하다고 하는 것은 무엇이유일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동양의학은 육체 속에 들어 있는 생명력인 정신(氣)을 치료하는 의학이라 하였는데 말입니다.

현미경이 있다면 무엇이든 찾아낼 수 있습니다. 현미경이 발달하면 더 작은 것을 또 볼 수 있습니다. 현미경이 또 더 발달하면 그보다 더 작은 것을 또 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결국 이런 현실이 현대의학의 미시세계 지향으로 나타나고 치료의 대상인 인간의 육체는 간데없고 세포 속에서만 놀게 되는 의료 현실을 자초해 내고 만 것입니다. 과학의 대상이 되는 육체 또한 동양의학에서도 치료하는 것입니다. 단지 살아있는 육체, 늘 무엇이 움직이고 있는 육체를 치료하는 것이 동양의학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