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 하늘의 움직임을 상징하는 10가지 기호인 천간(天干)이다.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 땅의 변화를 상징하는 12지지(地支)다. 각각을 음과 양으로 구분하여 짝을 지으면 갑자부터 계해까지 이른바 육십갑자, 줄여서 육갑이 나온다.
선조들은 복잡다단한 자연과 세상 이치를 육십갑자로 상징화했다. 그 핵심은 돌고 도는 순환과 변화 속에서 어떻게 조화를 찾느냐다. 즉 갑은 영원히 갑일 수 없고 갑 자체로 혼자 좋은 것도 아니다. 고인 물은 썩듯이 세상 어떤 것도 변화의 기운을 거스를 수 없다. 한마디로 역(易)의 이치다.
최근 핫이슈 중 하나가 바로 ‘갑을 담론’이다. 대기업 본사와 가맹점, 재벌과 노조원, 백화점과 입점업체 등 우리 사회 구성원을 갑과 을로 구분한다. 그러나 대기업의 영업사원은 과연 갑인가, 을인가. 가맹점주에겐 갑이지만, 사주에겐 핍박받는 을 신세다. 백화점에 입점한 자영업자는 을이지만, 그 역시 자신의 판매원에겐 갑이다. 영원한 갑도 을도 없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다. 불면증으로 내원한 중년주부의 예를 보자. 그는 “남편이랑 한 방에서 자면 한숨도 못 자고, 따로 자면 그나마 2~3시간은 잔다”고 말한다. “갱년기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그의 불면증 역시 ‘을의 반격’이다. 남편은 한마디로 지난 20여년간 집에서 완벽한 갑이었다. 밥상에선 “짜다, 싱겁다” 등 타박이 식사 내내 늘어졌고, 아내와 자녀들을 직장 부하 대하듯 했다. 모든 건 경제권을 쥔 남편과 그렇지 못한 아내라는 세속적 기준만이 존재했다. 아내와 어린 자식들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아내는 남편의 지적을 받지 않으려 결벽증에 가깝게 미리미리 눈치를 봐야 했다.
그러나 이젠 상황이 달라졌다. 아니 달라지고 싶어 한다. 아이들도 성장했고 남편은 퇴직했다. 아내는 이제 자신의 자유의지로 살고 싶다. 그러나 남편은 사사건건 “어딜 가느냐” “왜 나가느냐”며 개입한다.
자녀들도 마찬가지다. 아버지의 무서운 훈육에 참기만 하던 자식도 더 이상 고분고분하지 않다. 휴일에 아버지가 집에 있으면 일부러 약속을 만들어 나가버린다. 퇴직한 남편은 이제 밥 한 끼 함께 먹고픈 단란함조차 꿈꾸기 어려운 왕따다. 고기 없는 못가의 늙은 백로처럼 말이다.
환자 역시 “남편 비위를 맞추려니 집에만 있어도 불안하다”고 말한다. 어떻게든 혼자 밖으로 나가려 하지만, 남편은 외롭다며 어떻게든 같이 따라나서려 한다. 갑과 을이 뒤바뀐 셈이다. 때로는 이런 남편이 안쓰럽다. 그러나 설거지 한번 도와주지 않으면서 “외식은 절대 못한다, 집에서 밥 먹자”라며 여전히 갑의 태도를 보이면, 가슴에서 불쑥 뭔가가 치밀어 오른다. 남편, 즉 갑의 횡포로부터 이제는 제발 멀어지고 싶은 무의식적 소원이 불면증의 실체다. 이제 육아와 가사는 한 숨 돌렸으니 더 이상은 을로 살긴 싫다는 절규다.
상당수 중장년 우울증 환자들은 갱년기나 여성호르몬 감소라는 말로 포장하지만, 그 이면엔 갑과 을의 갈등이 존재한다. 을로 살아온 지난날에 대한 후회와 억울함, 이 모든 것이 갑의 횡포 때문이라는 분노, 남은 노년기마저 핍박받는 을의 신세로 살지 모른다는 불안까지 뒤섞인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벌어진 일련의 갈등들과 다르지 않다.
이제마는 재물과 권력을 인간이 스스로를 감옥에 가두는 가장 큰 요소로 내다봤다. 다만, 재물은 검약하며 행복과 바꿀 때, 권력은 억울한 이를 만들지 않을 때 비로소 화를 면할 수 있다. 잠시 갑에게 머물러 있는 힘에 도취되지 않는 것이, 종국에는 갑 스스로가 다치지 않는 유일한 길이다. 그렇지 않으면 돌고 도는 변화 속에 갑의 위치에서 언제는 내려와야 할 때의 고통이 더욱 쓰라릴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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