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각한 기면증 때문에 내원한 한 고등학생. 계단을 올라가다가 순간 잠이 들어 굴러 넘어졌다. 길을 가다가도 갑자기 졸음에 빠져 가로수에 부딪혀 코뼈까지 다쳤다. 전날 잠을 충분히 잤는데도 중요한 시험 도중에 깜빡 잠이 드는 등, 믿기지 않은 일이 1년째 계속 되고 있다.
특목고 진학 실패와 부모님과의 갈등에 원인이 있었다.
목사인 아버지는 성적에는 관대했다. 하지만 목사인 자신처럼 아들도 모범적이고 금욕적인 생활을 하길 원했다.
스마트폰과 인터넷을 차단했고, 심지어 노래방도 못 가게 막았다. 모든 게 음란물을 접하면 잘못된 성(性)인식을 갖게 된다는 이유였다.
또, 아들의 기면증이 밤늦게 음란물을 많이 봐서라고 여기고 있었다. “제발 자유를 달라”는 아들의 절박한 호소마저 번번이 외면한 부모는 더욱 강경하게만 나갔다. 그런데 갈수록 기면증은 더 심해졌다.
부모 말대로 몰래 밤늦게까지 음란물을 봐서 피곤해서 기면증이 생긴 걸까. 기면증은 몸의 피로보다 직면하기 싫은 현실에 대한 무의식적 회피심리 때문에 발생한다. 사춘기 아들의 성적 호기심까지 종교의 잣대로 죄악시하는 숨막히는 현실 탓이 더 크다.
스마트폰도 인터넷도 모두 돌려줘야 한다. 음란물을 보든 말든 부모는 신경을 끊는 게 좋다. 충동은 억압할수록 더욱 강해지고 왜곡된다.
TV, 영화, 인터넷 등 언제 어디서고 음란물은 넘쳐난다. 음란물이 없는 세상이나, 있어도 보지 못 하도록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춘기 통과의례다. 아들이 목사도 아닌데 굳이 죄책감까지 갖게 할 이유가 없다.
대신, 부모는 음란물을 지나치게 탐닉하면 왜 해로운지, 딱 한 가지만 일러주면 된다.
바로 음란물에서 펼쳐지는 거짓 연기를 진짜 현실로 믿는 어리석음이다. 즉, 음란물 속 여배우의 반응들을 진짜 좋아서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이는 탄산음료 광고를 자꾸 보다보면 진짜 건강음료로 착각하는 식이다.
성추행이나 성폭력 남성들은 이런 착각에 사로잡혀 있다. 부부간에도 마찬가지다. ‘모든 여성은 불감증’이라는 말처럼 대부분의 건강한 여성들은 포르노 배우와는 달리 성관계를 즐기지도 그들처럼 흥분하지도 않는다. 오랜 세월 임신과 출산은 여성에게 가장 큰 사망원인이었기에 여성의 무의식엔 성관계에 대한 공포가 강하게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사랑하는 이와의 감정공유에 목적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음란물을 연기가 아닌 진짜라고 착각할 때 문제가 생긴다. 자신의 충동대로 실행해도 상대 여성이 좋아할 거라고 착각한다.
대부분의 음란물 속에선 여배우가 그렇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사춘기 청소년들만의 착각이 아니란 점이다. 별다른 성교육을 받지 못한 새신랑이나 심지어 중장년 남성들도 마찬가지다.
부인이 음란물 속 여배우처럼 흥분하지 않는 것을 도리어 비정상으로 여긴다.
또 여배우처럼 거짓 연기를 해주는 여성을 궁합이 잘 맞는다고 착각한다. 남성을 이용하려고 즐거운 척 해주는 거짓 연기임을 모른다.
이런 착각이 음란물이 주는 가장 큰 해악이다. 음란물을 보되 연기와 현실만 구분할 수 있으면 큰 위험을 초래할 일은 적고 호기심도 자연히 줄게 된다. 현실적으로 아예 못 보게 할 수 없다면, 부모들이 할 수 있는 건 이를 정확히 일러주는 것이다.
모든 욕구는 억압할수록 더욱 강해진다. 성욕을 음탕하고 저속한 것으로만 치부하며 ‘내 안에는 저런 욕망이 없다’라거나 ‘저런 욕구는 모두 없어야만 한다’는 것 또한 억압이다.
이제마는 ‘색(色)의 중절(中絶)’을 강조했다. 즉, 성욕을 있는 그대로 인지하고 적절한 때와 대상을 통해 호연지기로 조절하는 것이다.
이것이 짐승의 몸으로 태어난 인간이 성욕을 사회적 틀 속에서 바르게 제어할 수 있는 최선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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